DoF란?
DoF(Degree of Freedom)란 로봇이 공간 내에서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관절의 방향 또는 축의 개수를 의미합니다. 로봇이 특정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위치와 자세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의 척도로 사용됩니다. 보다 많은 DoF를 갖춘 로봇일수록 복잡하고 섬세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돌아온 ‘제로가 직접 말아주는 딥테크’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로봇’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인간과 비슷한 생김새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떠올리는 게 어색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아 보이는 건 부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렇듯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로봇’을 구현하기엔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론, 자율주행 배송 로봇이 거리를 누비고 공장에서 부품을 조립하는 협동 로봇은 일상에 제법 스며들었습니다.
로보틱스는 오랫동안 연구되어 왔고, 그동안 여러 번 ‘이번엔 진짜다’라는 기대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반복적으로 좌절되기도 했죠. 이번에는 다를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는 AI라는 소프트웨어가 로봇이라는 피지컬을 만나기 시작했기 때문인데요. 이제 로봇은 단순한 기계 장치가 아니라, AI가 현실 세계와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AI와 로봇의 발전 과정에서 반복되어 온 흐름을 관찰하며, 로봇 기술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알아보려 합니다.
모든 기술이 그렇듯, 로봇 발전 과정에도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패턴이 있습니다. 언제나 출발은 ‘만능’을 꿈꾸면서 시작하는데요. 범용적인 목적을 위해 일할 수 있는 로봇을 고안하지만 기술적 한계에 부딪히고, 결국 특정 작업만 잘하는 버티컬 로봇을 개발하게 되는 흐름입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기술 발전이 축적되면 Universal을 향해 다시 나아갑니다. Universal과 Vertical이 끊임없이 핑퐁하는 거죠. 지난번 AI 에이전트 아티클에서 소개한 패턴과 닮아있기도 합니다.
로봇이 처음 등장한 건 1950년대입니다. 이때 등장한 1세대 로봇은 ‘산업용 로봇의 시대’를 열었고, 대부분 로봇팔 형태로 제조업에 활용되었는데요. 그 시작은 1961년 미국 GM 공장에 도입된 Unimate라는 로봇입니다. Universal Automation의 합성어로, 아쉽게도 Universal Mate는 아닙니다.
당시로서 Unimate는 혁신적이었습니다. 10만 시간 이상 가동되며 포크레인에 주로 사용되는 유압장치를 활용해 최대 150kg까지 들어 올릴 수 있었죠. 하지만 디자인을 보면 아시겠지만, 우리가 쉽게 상상하는 멋진 로봇보다는 무거운 기계에 가까웠습니다. 당시엔 전자공학보다 기계공학 중심의 시대였기 때문에 상용화가 어려웠고, 결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죠.
1970년대, 전자공학의 시대가 열리면서 로봇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습니다. 1973년, 일본에서 최초로 전기모터 기반의 로봇이 등장했는데요. 전자식 로봇이라기엔 유압장치가 들어간 포크레인에 가깝고, 바닥과 한 몸이었던 1세대 로봇에서 한 걸음 나아가게 된 거죠.
이러한 진전은 반도체와 집적회로(IC)의 발전 덕분에 가능했는데요. 덕분에 로봇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도 향상되었고, 더 가볍고 더 똑똑한 로봇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죠. 더 나아가 유압장치에서 전기모터 형태로 변환되며 무게가 가벼워진 만큼, ‘이제 로봇을 움직여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이동성이 부여된 로봇 개발이 시작되는데요. 그렇게 두 발로 걷는 최초의 휴머노이드 로봇 ‘와봇’이 일본에서 탄생합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비슷한 시기에 A* 알고리즘이 처음 개발되었다는 점입니다. A* 알고리즘이란 오늘날 내비게이션의 근간이 된 알고리즘으로, 특정 지점에서 목표 지점까지 최적 경로를 찾는 기술입니다. 처음부터 자동차를 위해 고안된 기술이 아니라 로봇의 효율적인 경로 탐색을 위해 만들어진 알고리즘인 거죠.
결국 산업용 로봇은 Universal Automation이라는 이름값을 전부 달성하진 못했지만, 인간을 대신해 위험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버티컬하게 해결하며 제조업 현장에 정착했습니다.
특히 로봇팔의 자유도(DoF, Degree of Freedom)가 증가하면서 점차 인간의 손동작을 흉내 낼 수 있게 되었는데요. 인간의 손은 22 DoF인데, 당시 로봇은 6 DoF까지 구현하며 컨베이어 벨트의 다양한 작업을 담당하게 됩니다. 이 시점부터 비로소 우리가 생각하는 ‘멋진 로봇’들이 하나둘씩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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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F란?
DoF(Degree of Freedom)란 로봇이 공간 내에서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관절의 방향 또는 축의 개수를 의미합니다. 로봇이 특정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위치와 자세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의 척도로 사용됩니다. 보다 많은 DoF를 갖춘 로봇일수록 복잡하고 섬세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기술 발전의 흐름은 반복됩니다. AI와 비교하면 이해하기 수월해지는데요.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Universal AI를 만들고자 했지만, 잘 안 되니 Vertical AI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이후 Transformer 모델과 LLM이 등장하며 다시 Universal AI에 도전하게 되죠. 1980년대 로봇도 비슷했습니다. 산업용 로봇을 넘어 인간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서비스 로봇을 만드는 새로운 도전이 시작됩니다.
1980년대에는 전자공학 다음으로 전산학이 발전합니다. 이러한 흐름이 2000년대까지 이어지면서 서비스 로봇의 시대가 새롭게 열리고, 사람의 모습과 비슷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제대로 나오기 시작합니다.
2000년에는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의 눈부신 결과물, 혼다의 ‘아시모’가 등장하는데요. 전산학이 발전함에 따라 로봇의 자세 제어(Locomotion) 알고리즘이 발전했고, 센서와 반도체, 카메라, 배터리 등 전자식 로봇 내에 탑재되는 부품의 성능과 하드웨어(HW) 기반 기술들 역시 개선되었습니다. 그 결과 전력시스템, 구동부, 컴퓨터, 카메라 처리, 센서까지 모든 게 내장된 로봇이 나올 수 있었던 거죠.
밀레니엄 베이비 아시모에 대해 더 알아볼까요? 아시모의 기술력은 2005년 당시만 해도 진짜 멋있는 거였습니다. 뚜벅뚜벅 계단 오르기! 다섯 손가락 접기! 지금 보면 별거 아닐 수 있지만, 당시 AI와 반도체 성능이 처참했던 걸 생각하면 아시모는 그야말로 눈부신 성과였습니다.
저희가 현재 주목하는 현시점의 Transformer 기반 AI Trend를 일으킨 주역인 제프리 힌턴과 젠슨 황의 시대는 2012년에 시작되었는데요. 그로부터 7년 전, 지금보다도 훨씬 이전 세대인 AI 기술과 HW 기술로 만든 아시모가 계단을 오르는 모습은 당시에는 충격에 가까운 혁신이었던 겁니다.
해당 시점부터 미국 DARPA(방위고등연구계획부) 중심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이 견인되기도 했습니다. 재난 현장처럼 극한 환경에서 로봇이 얼마나 어려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 실험하며 다양한 과제를 부여한 건데요. 차량 운전하기, 돌무더기 바닥 위로 걸어가기, 입구 막은 잔해 치우기, 문 열기, 도구를 사용해 벽 부수기 등이 있었죠.
페이페이 리가 이미지넷 챌린지를 이어가며 AI의 겨울을 버티는 동력을 만들어 딥러닝의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DARPA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휴머노이드 챌린지를 열면서 로보틱스의 겨울을 극복해 나가려 했던 거죠. 이 시기에 한국도 엄청난 성과를 거두는데요. KAIST가 개발한 ‘휴보’가 DARPA 챌린지에서 1등을 차지하며,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있어 한국과 일본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DARPA가 아무리 챌린지를 개최해도, “도대체 휴머노이드 로봇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지?”라는 질문은 미결 상태로 남아 있었습니다. 무대를 뒤집어 놓으신 아시모의 계단 오르기였다고 하지만, 시장은 차갑다 못해 얼어붙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혼다는 2018년 아시모 개발을 중단했고 로보틱스의 겨울이 다시 시작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렇듯 지난한 과정을 겪으면서 발전한 기술들이 그냥 사라진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데이터 처리와 알고리즘 기술은 AI 및 컴퓨터 비전으로, 모바일 이동성과 내비게이션 기술은 자율주행으로, 비행 로봇은 드론으로, 휴머노이드는 재난 및 구조 로봇으로, 로봇팔은 산업용 로봇 형태로 다시 버티컬하게 재조정되었습니다.
겨울이라고 해서 모든 게 얼어붙는 건 아니듯, 로봇에 사용되는 하드웨어 기술은 꾸준히 발전되어 왔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성능은 좋아지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며 가격은 저렴해졌죠. 필요한 부품, 수량, 원가 구조가 정리되면서 액추에이터, 하모닉 감속기, 모터 등 핵심 부품의 공급망도 어느 정도 완성되었습니다.
덕분에 2010년 이후 서비스 로봇은 공항 안내 로봇, 물류 로봇, 로봇청소기처럼 각 영역에 버티컬하게 자리 잡게 됩니다. 하드웨어 발전은 그래도 꾸준했지만, 여전히 Transformer의 제안 이전의 AI 기반 소프트웨어 발전은 여전히 본질적인 한계를 뛰어넘고 있지 못하던 상황이었는데요. 기계공학, 전자공학, 전산학이 차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당시 2010년대는 전산학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당시 소프트웨어(SW) 기술은 이전 세대보다는 뛰어나지만, 다음 세대로의 전환을 만들어내기엔 부족했던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릅니다.
앞서 로보틱스의 겨울이 다시금 시작된 이유로 휴머노이드 로봇이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제대로 정의할 수 없었던 상황이 배경이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버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보스턴 다이나믹스입니다.
2017년, 보스턴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는 아시모의 계단 오르기를 뛰어넘는 아틀라스의 백텀블링을 성공시킵니다. 보스턴다이나믹스의 역사를 보면 그다지 놀랍지 않은 행보이기도 합니다. 1980년대 랩실에서 출발해 1992년 법인 설립, 2013년 구글 인수, 2017년 소프트뱅크 인수, 그리고 2021년 현대차가 인수했는데요. 존버만 30년 넘도록 해온 잔뼈 굵은 기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195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이르는 로보틱스 오디세이를 톺아봤습니다.
긴 흐름 속에서 반복되는 기술 발전의 패턴, 감지하셨나요? 핵심은 Universal과 Vertical의 왕복운동에 있습니다. ‘만능 로봇’을 만들고 싶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Vertical로 전환했고, 다시 하드웨어와 데이터, 알고리즘이 갖춰지면서 Universal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드는 시도가 이어져 온 건데요. 이렇게 로봇도 AI도 조금씩 전진해 온 겁니다.
그렇다면 2025년 현재는 어떨까요? Transformer 기반의 대형 모델(Large Model)의 제안 이후, 로보틱스는 VLA 모델이라는 새로운 키워드와 함께 또 한 번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음 편에서는 ‘로보틱스의 겨울이 가고 다시 봄이 올까요?’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2020년대에 들어 시작된 로보틱스의 새로운 파도를 다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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