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HR, 전혀 다른 게임: HR SaaS 버티컬 확장이 어려운 이유

같은 HR인데 왜 HRM, HRD, 채용이 서로 다른 시장처럼 움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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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12, 2025
같은 HR, 전혀 다른 게임: 
HR SaaS 버티컬 확장이 어려운 이유

예비 창업자와 이미 제품을 만들고 시장을 두드려본 창업자 모두에게 ‘어디서부터 진입할 것인가’와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는 늘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한 번쯤은 이런 전략을 떠올려보셨을 겁니다. 하나의 니치한 버티컬로 뾰족하게 진입해 옆 카테고리로 자연스럽게 확장하고, 결국엔 업 전체를 장악해 나가는 전략 말이죠.

그럴듯해 보이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습니다. HR SaaS 시장을 보면 더 와닿습니다. HRM, HRD, 채용이라는 세 영역은 하나의 HR 카테고리에 속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성격의 비즈니스 세 개가 공존하는 구조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HR SaaS의 세 가지 버티컬을 차례로 분석하면서 각 버티컬이 어떤 전략적 성격을 지니는지, 업의 성격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 HRM: 기술은 쉬울 수 있어도 시장은 어렵다

근태 및 급여처럼 기업의 인력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HRM(Human Resources Management) 영역은 SaaS 전환이 가장 빠르게 진행된 분야입니다. 업무 프로세스가 정형화되어 있고 반복성이 높은 만큼, 자동화와 솔루션화를 위한 조건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인데요.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HRM 버티컬에는 수많은 제품이 출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시장을 들여다보면, 많은 제품이 경쟁하는 듯 보여도 결국 몇 개 제품으로 수렴되는 흐름이 나타납니다. 그 이유는 스위칭 코스트가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HRM 솔루션은 전사 직원이 매일 사용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한 번 도입되면 바꾸기 어렵고, 시스템 교체 시 조직 전체의 운영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죠. 연차 관리 시스템이 하루만 멈춰도 업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많은 기업은 다소 불편하더라도 익숙한 툴을 그대로 유지하는 편을 택하게 됩니다.

또한, HRM 영역은 이미 잘하는 플레이어가 여럿 존재하는 시장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인력관리 솔루션 시프티입니다. 시프티는 2023년 기준 영업이익률 74.5%를 기록했고, 솔루션을 도입한 사업장 수는 30만 개를 넘어섰습니다. 특히 중견 및 대기업을 중심으로 유료 고객의 재구매율이 97.2%에 달할 만큼, 제품 충성도와 확장성이 입증된 상황이죠.

시프티 영업이익
© 시프티

여기에 더해 기존 ERP(전사적 자원 관리) 강자들의 움직임도 HRM 시장의 진입장벽을 더욱 높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더존비즈온은 ERP 솔루션 제품에 인사관리 모듈을 포함해 제공하는데요. 기업 입장에선 이미 익숙한 ERP 시스템 안에서 HRM 모듈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 시스템 자체를 변경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기존 ERP 기업에게 HRM 툴은 락인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고, 새롭게 진입하려는 스타트업에게는 또 하나의 높은 허들이 되는 셈입니다.

이렇듯 HRM 영역은 겉보기에는 기술적 진입 장벽은 낮아 보일 수 있겠으나, 이미 락인된 시장에서 기업이 제품을 바꾸게 만들 설득 포인트를 발굴하는 것 자체가 난이도 높은 과제입니다. HRM에서 출발해 HRD나 채용처럼 같은 HR 내 인접 버티컬로 확장하는 것 역시, 단순히 기능을 하나 더 추가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는데요. 각 버티컬이 안고 있는 과제의 성격이 전부 다르기 때문입니다.


2. HRD: 소프트웨어만 잘 만들어선 어려운 하이터치 SaaS

성과관리, 피드백, 리더십 교육, 구성원 성장까지 HRD(Human Resources Development)는 조직 문화와 사람의 성장을 다루는 영역입니다. 다시 말해, 조직의 철학과 리더십, 문화적 방향성을 장기적으로 설계해 나가는 일과 맞닿아 있는 비정형적 영역입니다. 그만큼 기업 입장에서는 HRD 솔루션 도입이 곧바로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감수해야 하기도 합니다.

HRM 영역만큼 많은 제품이 출시되지는 않았지만, HRD 영역에서도 다양한 성과관리 SaaS가 출시되어 있습니다. 저희 카카오벤처스가 투자한 레몬베이스, 중견기업을 타깃으로 한 클랩, HRM에서 시작해 성과관리까지 아우르는 올인원 HR 플랫폼으로 확장한 플렉스가 대표적입니다. 대부분 목표 관리, 1:1 미팅 및 피드백, 평가 기능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엑셀과 노션 사이를 떠도는 구성원의 성과 데이터를 일관되게 기록하고 시각화하는 시스템을 제공해, 평가의 객관성과 편의성을 높이는 것이 핵심입니다.

레몬베이스
© 레몬베이스

이런 점에서 보면, HRM에서 HRD로의 확장은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이미 HRM 솔루션으로 확보한 고객사와의 접점을 바탕으로, 기록된 데이터를 활용해 성과관리 기능까지 넓혀 나가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HRD는 단순히 소프트웨어를 잘 만든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닙니다. HRM이 ‘운영 효율’을 기능적으로 해결한다면, HRD는 ‘문화와 성장’이라는 전혀 다른 과제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성과관리 솔루션의 도입은 곧 조직의 성과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구성원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포함합니다. 관리자 온보딩부터 조직 전반의 인식 전환이 함께 이뤄져야 하고, 경영진 레벨에서의 설득도 필요합니다. 그만큼 세일즈 사이클도 자연히 길어지는데요. 어떤 의미에선 컨설팅에 가까운 하이터치 SaaS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RD 영역은 그만큼 업사이드가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AI를 활용해 축적된 성과 데이터를 분석해, 리텐션을 예측하거나 인사이트 리포트를 제공하는 등 전략적 의사결정을 돕는 방향으로 제품이 진화하고 있는데요. 결국 HRD는 단순히 좋은 기능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조직의 철학과 문화를 설계하는 좋은 ‘관점’을 제시할 수 있는 팀이 유리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3. 채용: 플랫폼 전략이 성패를 좌우한다

채용 영역은 얼핏 보면 진입장벽이 낮아 보이는 시장입니다. 지원자 관리, 서류 평가, 면접 일정 조율, 평가 기록 등 워크플로우의 각 단계마다 필요한 기능이 비교적 명확하고, 세분화된 단위로 쪼개 SaaS로 만들기도 쉬운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분절된 기능을 통합하면, 전체 채용 여정을 관리하는 ATS(Applicant Tracking System) 형태로 발전시키기도 용이하죠.

그리팅 ATS
© 그리팅

이렇다 보니 채용 영역에는 다양한 제품이 출시되어 있습니다. 전통적인 채용 포털 잡코리아, 사람인 등을 시작으로, 그리팅처럼 기업 채용 페이지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범용 ATS 솔루션도 활발하게 활용됩니다. 동시에 레퍼런스 체크 특화 플랫폼 스펙터, AI 특화 서류 평가 및 면접 솔루션 프리즘x몬스터처럼 기능 단위에서 파고든 제품들도 눈에 띄는데요. 다른 한편에서는 프리랜서 채용에 집중한 크몽, IT 프로젝트 매칭 플랫폼 위시켓처럼 특정 타겟 세그먼트에 집중하는 제품도 함께 경쟁하고 있습니다.

채용 플랫폼과 네트워크 효과
© 카카오벤처스

그렇다면, 이렇게 경쟁이 치열한 시장의 해자는 무엇일까요? 채용 SaaS의 성패는 ‘플랫폼을 만들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결국 핵심은 “지원자가 얼마나 모이는가?”, “채용 공고가 얼마나 많은가?” 두 가지 질문으로 압축되기 때문인데요. 좋은 기능은 시장 진입의 계기가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시장을 리드하고 판을 키우기 위해서는 지원자와 기업, 즉 수요와 공급이 모두 모이는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하는 겁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채용 SaaS 기업이 플랫폼형 구조로 모습을 바꿔 나가고 있습니다. 마이다스아이티는 기업용 ATS와 성과관리 솔루션인 에이치닷에 더해, 구직자용 역량검사 플랫폼 잡다를 함께 운영하며 지원자와 기업을 모두 아우르는 양면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잡코리아는 ATS 스타트업 나인하이어를 인수하며 기존 채용 플랫폼 트래픽에 ATS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채용 영역에서의 해자는 플랫폼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채용 영역은 ‘유입’과 ‘전환’이라는 명확한 지표로 성과가 가늠되는 시장인 만큼, 지원자 데이터, 기업 공고, 채용 콘텐츠 등 전체 채용 여정을 감싸는 네트워크를 확보하는지가 곧 경쟁력을 좌우하게 됩니다.


이번 글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겉보기에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이는 시장이라 해도, 각 버티컬은 전혀 다른 비즈니스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업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인데요. HR SaaS의 세 가지 주요 버티컬만 보더라도, 고객의 니즈부터 성공 조건, 해자까지 서로 다르게 작동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의 니치한 버티컬로 시작해 옆으로 확장을 고민하고 계신 창업자 분들께, 이 글이 각자의 선택을 점검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 보는 작은 실마리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각자의 업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시장을 파고들기 위해 애쓰고 계신 모든 창업자 분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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