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스타트업은 얼마의 가치가 있을까?” 모든 창업가가 마음에 품고 있을 질문입니다.
사실 스타트업의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산정)은 누구에게나 난제인데요. 특히 극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아직 제품이 완성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성과를 증명할 정량적인 지표도 충분하지 않죠.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는 만큼, 스타트업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스타트업은 투자를 받아야 하고, VC는 투자처를 찾아야 합니다. 이 투자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느 순간 그 기업의 ‘가격’을 정해야만 하죠.
창업가는 자신이 만든 회사가 좋게 평가받길 원하고, 투자자는 리스크를 감안하여 결정하고자 합니다. 결국 양측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협상 테이블에 앉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불확실한 조건 아래 스타트업의 밸류는 어떻게 정해질까요?
이번 글에서는 창업가가 실무에서 마주할 주요 밸류에이션 기법과 숫자 밖의 정성적 요인들, 그리고 실제 투자자들이 전하는 실용적인 조언들을 모아 정리해 보았습니다.
현장에서 사용하는 밸류에이션 방법론
(1) PSR
PSR(Price Sales Ratio)은 매출 대비 기업가치를 계산할 때 사용하는 지표입니다. “현재 회사 매출이 X원일 때, 시장은 그에 대해 몇 배만큼의 가치를 인정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제시하는 방식이죠. 주로 SaaS처럼 구독 기반 반복 매출이 핵심인 비즈니스 모델에서 자주 활용됩니다.
매출 기준으로는 월간 반복 매출과 연간 반복 매출 모두 사용할 수 있지만, 연간 반복 매출을 중심으로 PSR을 계산하는 것이 더 일반적입니다.
이때 PSR이 유효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매출 수치가 단순한 기대치가 아닌, 현재 시점에서 실제로 ‘락인’되어 있는 가시성 높은 매출이어야 하는데요. 아직 수익이 발생하지 않았거나 손익이 0에 가까운 극초기 스타트업의 경우에도, 이 방식으로 일정 수준의 기업가치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PSR
= 시가총액 / 총매출
= 주가 / 주당 매출액
그렇다면 몇 배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또는 몇 배 이상이어야 손해가 아닌 걸까요?
실무에서는 이에 대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고정값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시적인 시장 심리나 산업 트렌드, 금리, 자금 유동성과 같은 다양한 외부 요인에 따라 유동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코로나19 시기에는 SaaS 기업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높아지면서, 연간 반복 매출이 10억 원 수준인 기업이 1,000억 원 이상의 밸류에이션을 인정받는 사례도 다수 등장했는데요. 실적 자체보다도 ‘시장 기대’가 배수에 반영된 대표적인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25년 현재 기준으로 PSR은 연간 반복 매출의 약 5배 수준에서 형성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며, 지금은 유효하지만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수치에 해당합니다.
결국 PSR은 단순 공식이라기보다는, 시장의 기대와 현실이 모두 반영된 ‘시장적 배수’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죠.
(2) 동종업계 비교분석
동종업계 비교분석(Peer 분석)은 비슷한 기업들의 현재 밸류에이션을 기준으로 스타트업의 가치를 추정하는 방식입니다. “나와 비슷한 SaaS 기업이 ARR의 7배로 평가받는다면, 우리도 비슷한 수준에서 협상을 시작해 볼 수 있겠다”는 논리입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비교 대상의 선정입니다. 단순히 업종만 같다고 해서 유효한 비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규모, 성장성, 자본 구조, 수익모델 등 여러 측면에서 유사성이 확보되어야 하죠.
예를 들어 넛지헬스케어가 운영하는 헬시테크 플랫폼 ‘캐시워크’와 중고 직거래 플랫폼으로 시작한 지역 기반 커뮤니티 ‘당근’은 전혀 다른 서비스처럼 보이는데요. 사실 광고 매출을 주요 수익원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수익 구조를 가진 기업으로 묶일 수 있습니다.
이 방식은 시장의 분위기와 타이밍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코로나19 시기처럼 특정 산업군에 대한 기대가 유난히 높았던 때의 데이터를 기준으로 삼으면, 지금 시점과는 맞지 않는 밸류로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의 금리 변화, 투자 심리, 수익성에 대한 기준 변화 등으로 인해 유사 기업의 밸류도 크게 조정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Peer 비교의 두 가지 핵심은 올바른 기업을 선택하는 것과 적절한 시점의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3) 사용자 수
사용자 수 역시 수익화가 본격화되지 않은 스타트업의 잠재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입니다. 아직 뚜렷한 매출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일정 규모의 사용자가 확보되어 있다면 향후 트래픽 기반 수익화나 제품 확장을 기대해볼 수 있기 때문이죠.
사용자수는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가’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는 수치로, 미래 가능성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지표로 MAU(월간 활성 사용자 수)와 DAU(일간 활성 사용자 수)가 자주 활용됩니다. 가입자 수와 함께 이 지표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며, 서비스가 얼마나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지를 평가합니다.
이러한 사용자 기반 지표는 소셜 미디어, 메신저, 게임처럼 반복적 사용이 자연스러운 서비스에 자주 활용됩니다. ‘카카오톡’처럼 매일 접속이 이뤄지는 서비스는 DAU의 의미가 크고, 일일 사용자 수와 리텐션이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반면, ‘에어비앤비’처럼 사용 빈도는 낮지만 거래당 수익이 크고 재방문율이 중요한 서비스에서는 사용자 수 자체보다는 예약 건수나 평균 거래 금액 등의 지표가 더 유효하게 작동하는 것이죠.
지난주에 소개한 Cluely의 사례도 사용자 수와 유사한 개념인 ‘사람들의 관심’을 기반으로 제품의 가능성을 입증한 사례로 볼 수 있는데요. Cluely의 구체적인 전략이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에서 아티클 전문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4) 대안적 밸류에이션: SAFE와 Refixing
밸류에이션을 명확히 확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SAFE 투자와 Refixing 조항 같은 대안적 방법이 활용되기도 합니다. 극초기 스타트업처럼 주요 지표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 이러한 방식을 통해 투자자와 창업자 간의 간극을 조율하기도 하죠.
SAFE(Simple Agreement for Future Equity)는 말 그대로 당장의 협상을 미루고, ‘미래의 주식 전환권에 대한 단순 계약’을 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투자금을 제공하고, 향후 회사가 본격적인 라운드 투자를 받거나 상장하는 시점에 주식으로 전환받는 형식이죠.
밸류에이션을 현재 확정하지 않고 나중으로 미룬다는 점에서 창업자에게 유리하게 작동할 수 있으며, 빠르게 자금을 유치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실용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SAFE 계약에는 몇 가지 핵심적인 조건이 존재합니다. 밸류에이션 캡은 추후 주식 전환 시 적용되는 회사 가치의 상한선을 의미하며, 할인율은 이후 투자자보다 더 유리한 조건으로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퍼센티지를 뜻합니다. 또한, SAFE가 발동되는 전환 조건으로는 다음 라운드 투자 유치, 회사 매각, 상장, 혹은 계약 만료 도래 등이 일반적으로 명시됩니다.
리픽싱(Refixing) 조항은 투자 이후 회사의 가치가 일정 수준 이하로 하락하고, 그 하락이 일정 기간 이상 지속될 경우 기존 전환 조건을 조정하겠다는 조항입니다. 예를 들어, 전환가액보다 주가가 30~50% 이상 하락하고 일정 기간 지속될 경우, 그에 맞춰 전환가를 낮추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이 조항의 기능은 두 가지로 나누어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투자자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로서의 역할입니다. 창업자 입장에서 보면 지분 희석의 위험이 존재하나, 투자자 입장에서는 시장 상황이 악화되었을 때 손실을 줄일 수 있는 일종의 보험으로 작용합니다. 특히 변동성이 큰 시장 환경에서는 이러한 조항이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되며, 국내에서는 이미 실무적으로 자리 잡은 조항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기 위한 창업자의 설득 도구로도 사용됩니다. 가령 창업팀은 특정 마일스톤을 달성할 수 있다는 내부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외부의 투자자는 그 가능성을 확신하기 어려울 수 있죠.
이때 리픽싱 조항을 활용하면, “목표를 달성하면 높은 밸류를 인정받고, 못하면 투자자가 손해 보지 않게 조정한다”라는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렇게 리픽싱 조항을 유연하게 활용하는 사례가 스타트업 현장에 종종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밸류에이션 방법을 적용하더라도 그 바탕에는 항상 포텐셜, 즉 성장 가능성에 대한 판단이 존재합니다. 거시적 환경 속에서 해당 스타트업이 타겟으로 삼는 시장이 얼마나 확대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모든 밸류에이션의 목표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투자를 위해 고려하는 숫자 밖의 요인들
앞서 살펴본 PSR, Peer 비교, 사용자 수 등은 투자자가 스타트업의 가치를 평가할 때 참고하는 주요한 정량 지표입니다. 하지만 실제 투자 결정 과정에서는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정성적 요인들 역시 큰 영향을 미칩니다.
가장 대표적인 항목은 창업가와 팀의 잠재력입니다. 특정 분야에 깊이 있는 전문성을 보유한 창업가, 강한 실행력을 보여주는 팀의 조합은 그 자체로 투자자들에게 강한 신뢰를 줄 수 있습니다.
특히 과거 창업 경험이 있는 창업가의 경우, 그 이력이 높은 프리미엄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차례 성공적인 엑싯(exit)을 경험한 창업가의 재창업은 시장에서 높게 평가될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로, 투자자 간의 경쟁이 붙는 경우입니다. 특정 분야에서 공급보다 수요가 적은 상황, 즉 유망한 시장에 아직 진입한 팀이 적을 경우, 잠재력이 돋보이는 팀을 선점하기 위한 VC 간 경쟁이 형성되기도 합니다. 이 경우 상대적으로 높은 밸류에이션이 책정되는 사례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금 시장 전반의 유동성 역시 중요한 외부요인입니다. 벤처 출자자가 증가하고, 시장에 자금이 활발히 공급되는 시기에는 투자사들의 포트폴리오 확대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죠. 반면 거시 환경이 경색될 경우, 투자자들은 보다 신중한 접근을 택하고 리스크가 낮은 기업을 우선 고려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동일한 스타트업이라도 시기에 따라 밸류에이션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죠.
심사역이 전하는 조언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협상을 하는 투자자의 입장에서, 창업가분들께 꼭 드리고 싶은 조언 두 가지를 정리해보았습니다.
(1) 근거 있는 자신감
먼저, 협상에 임하는 태도는 그 자체로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밸류는 본질적으로 상대적인 수치이며, 서로가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 속에서 정해지는 값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신뢰와 설득력은 사업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옵니다. 시장 구조, 고객 문제, 제품이 제공하는 핵심 가치에 대한 명확한 관점과 그 위에 세워진 비전은 투자 판단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칩니다.
더 나아가 그 비전을 구체적인 실행 계획과 이정표로 연결해 내는 능력은 말 그대로 팀의 실행력을 증명하는 지표가 되죠. 단순히 ‘좋은 아이디어’보다 ‘문제를 풀 수 있는 역량’에 투자자는 더 큰 확신을 갖게 됩니다.
(2) 지금 이 순간, 그리고 그 다음
또한 밸류에이션은 한 시점의 숫자가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여러 투자 단계를 설계하는 전략입니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당장의 밸류를 최대한 높게 받는 것이 꼭 유리한 선택이 아닐 수 있습니다.
특히 초기 라운드에서는 합리적인 수준의 밸류로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오히려 장기적으로 더 유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후 라운드에서 성과 데이터를 쌓고, 이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밸류를 높여가는 전략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밸류가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 다음 투자 라운드에서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부담이 창업팀에 전가될 수 있습니다. 반면, 합리적인 출발점에서 출자자와의 신뢰를 쌓아가며 꾸준히 성장 곡선을 그리는 기업은 후속 투자에서도 훨씬 수월한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한 창업가가 제시한 밸류가 예상보다 낮아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한 적이 있습니다.
“다음 라운드 투자자도 먹을 게 있어야죠.”
이 한마디에는, 전후 투자자를 모두 만족시키는 지속적인 밸류 설계에 대한 관점이 담겨 있습니다. 창업자는 향후 라운드와의 연결성, 지분 희석 구조, 창업자 본인의 지분 비율까지 복합적으로 고려하며 다차 방정식을 풀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밸류에이션은 중요한 숫자지만, 그와 동시에 하나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창업자와 투자자의 파트너십이 시작되는 지점이죠. 그 순간부터 신뢰와 실행이 동반되어야만 진짜 ‘가치’가 만들어집니다.
완벽한 밸류에이션이 무엇인지 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합리적인 선에서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함께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출발일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회사를 어떻게 키워나갈 것인지 고민하며 함께 나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카카오벤처스는 언제나 창업가분들과의 파트너십을 소중히 여기며, 현실적인 시선으로 함께 성장의 방향을 고민하고자 합니다. 글에 미처 담지 못한 질문이나 의견이 있다면, 언제든 편하게 나누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카카오벤처스 투자팀의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커뮤니케이션팀 에디터 인턴 Chloe가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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