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 AI 시대, 살아남을 AI는 무엇일까?
언젠가부터 이런 경험 한 번쯤 해보셨을 겁니다. 오랫동안 익숙하게 써온 툴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새로 등장한 AI 기반 툴을 써봤더니 너무 편리해서 기존 툴을 자연스럽게 놓게 된 거죠. 마음먹고 갈아탄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바야흐로 지금은 툴을 바꾸는 데 따르는 ‘전환비용(Switching Cost)’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전환비용이란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로 바꾸기 위해 사용자가 감수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 익숙함을 포기하는 과정에서의 손실을 말합니다.
기존 툴의 경쟁력을 무너뜨리는 AI의 진화
예전엔 어떤 툴 하나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히스토리를 학습시키고, 단축키를 익히고, 사용자 설정값을 다듬는 일이 필수였으니까요. 이런 ‘러닝 커브’ 자체가 PMF(Problem Market Fit)의 일부였죠.
처음엔 불편하지만 자꾸 쓰다 보면 손에 익고, 커스터마이징과 룰 세팅, 단축키 같은 사용자 행동 데이터가 쌓여 점차 ‘나만의 툴’로 진화하는 구조였습니다. 즉 히스토리 중심의 PMF(Post-Market Fit) 공식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요? AI는 히스토리를 ‘생략’하고도 높은 만족도를 줍니다.
예를 들어, 이메일 정리 SaaS만 봐도 그렇습니다. Superhuman은 단축키 기반으로 사용자의 손에 익는 데에 집중한 반면, Shortwave는 그냥 인박스를 한 번 import만 해도, AI가 스스로 사용자의 정리 원칙을 추론해 알아서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결국 ‘나의 노하우’를 학습시킬 필요 없이, 처음부터 거의 완성형인 셈인데요. PMF가 ‘서서히 쌓이는 것’에서 → ‘등장과 동시에 만족도 90점 이상’으로 점프한 셈입니다. 그 결과, 스위칭 코스트는 점점 의미가 없어지고 있는 겁니다.
스위칭 코스트가 사라진 세상,
어떤 AI가 살아남을까?
스위칭 코스트가 낮아졌다는 건, 유저가 하나의 서비스에 오래 머물 이유가 줄어들었다는 뜻인데요. 예전에는 한 번 익숙해진 툴을 바꾸기 어려웠기 때문에 한 번 유입된 사용자는 쉽게 이탈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툴로 전환하는 과정 자체가 거의 생략되면서, 사용자는 ‘지금 당장 더 나은 것’을 찾아 움직이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어졌죠.
그렇다면, 이렇게 스위칭 코스트가 낮아진 시대에 어떤 AI 서비스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1. 히스토리 학습은 이제 의미 없다?
기존 AI 서비스는 사용자가 반복해서 쓰면서 기능을 정교하게 다듬고, 그에 따라 서비스도 고도화되곤 했습니다. 개인화된 업무 플로우와 같은 히스토리 및 맥락이 핵심 자산이었죠. 하지만 이제 그런 축적은 AI가 한 번에 압도적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과거 툴: 고객 만족도 50점 → 기능 피드백 → 점진적 개선
Gen AI 툴: 등장과 동시에 90~100점대 만족도 제공
‘한 번에 잘 되니까’, 예전 툴로 돌아갈 이유가 사라지는 겁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스위칭코스트가 남아있는 곳
그렇다고 모든 영역에서 AI가 무적이라는 건 아닙니다. 실제로 AI가 쉽게 침투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도 분명 존재하기에, 기술력보다 사용자 경험 설계력(UX)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1) 데이터 확보가 어려운 영역
헬스케어나 법률 영역처럼, 데이터 접근 자체가 어려운 산업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계열 데이터는 환자 개개인의 상태 변화를 추적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정보입니다. Mayo Clinic과 같은 대형 병원에서는 자주 방문하는 환자들의 데이터를 분석해, 심전도가 정상인 사람들 중에서 향후 2주 내에 부정맥이 발생할 확률이 높은 환자를 예측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면 예방적 조치를 통해 큰 위험을 미리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이런 데이터는 대부분 병원 내에서만 관리되고 외부와 쉽게 공유되지 않습니다. 자연스레 폐쇄형 데이터를 다루는 산업에서는 AI 기술력보다도 어떻게 데이터를 자연스럽게 수집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과제가 됩니다. 예를 들어, 의사-환자 간 임상 대화를 노트테이킹하고, 클릭 한 번으로 전자의무기록(EMR)과 연동시켜 주는 ScribeHealth처럼 사용자에게 새로운 행동을 요구하지 않고도 데이터를 확보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영역에서는 여전히 버티컬 SaaS가 유효하기도 합니다.
(2) 암묵지가 중심인 영역
심리상담, 초기 투자, 도제식 교육처럼 경험과 직관이 중심이 되는 분야는 정형화된 데이터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 머릿속에 있는 판단력, 감각, 맥락이 핵심인데요. 이건 Gen AI가 아무리 똑똑해도 흉내 내기 어렵죠. 즉 형식지는 대체할 수 있어도, 암묵지는 대체하기 힘든 겁니다.
예를 들어, 초기 투자에서 투자자는 단순히 숫자나 데이터를 넘어, 스타트업 창업자와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직관적 감각이나 회사의 비전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데이터로 정량화해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으로, 투자자의 직감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런 판단은 오랜 경험과 인간적인 이해에서 비롯되는 암묵지의 영역입니다.
그렇다면 AI는 이런 영역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AI가 암묵지를 학습하려면, 사용자가 자신의 맥락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도록 유도하고, 그것을 부담 없이 풀어내게 하는 UX 자체에 집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ChatGPT가 사용자에게 꼬리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이어가는 방식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점진적으로 질문을 던지며 사용자가 스스로 생각을 확장하고 구체화하도록 돕는 것처럼, 좋은 UX는 사용자가 처음부터 완벽한 답이나 정답을 내놓도록 압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작은 힌트, 예시, 가벼운 질문 등을 통해 조금씩 자신의 생각이나 감각을 풀어낼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유도합니다. 이처럼 과정 자체가 하나의 탐색적 대화가 되어야 사용자가 서비스에 몰입하며, 자신의 암묵지를 점진적으로 드러내 AI 서비스가 스스로 학습하게 만들 수 있는 거죠.
(3)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업무환경
기업마다 쓰는 툴, 프로세스, 포맷이 제각각인 경우, AI 도입이 어렵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은 고객 데이터를 관리하는 툴로 Salesforce를 쓰고, 다른 기업은 HubSpot을 쓰는 등 다양한 CRM 툴을 사용한다고 가정해 볼까요? 만약 AI 툴이 양쪽 시스템을 원활하게 연결하지 못한다면, 협업 시 데이터를 자동으로 업데이트하거나 분석하는 데 어려움이 생기죠. 이럴 경우 AI 도입이 실질적인 효용을 가져오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AI가 아무리 똑똑해도, 기존 워크플로우와의 마찰을 줄이지 않으면 도입되기 어려운 것입니다.
특히 B2B 분야에서는 AI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 영업조직의 신뢰를 얻는 것이 더 어려운 과제일 수 있습니다. AI 도입에 대해 생산성 향상으로만 설득하기에는 그 효과를 정량적으로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변수가 많아 도입을 망설이기 때문에 영업력이 여전히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죠.
AI 서비스의 생존조건은
더 이상 기술이 아니다
AI는 상상 이상의 일들을 해내고 있고, 많은 영역을 빠르게 잠식해 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데이터’, ‘맥락’, ‘사람’이라는 벽은 남아있죠.
이제 정말 중요한 것은 사용자의 행동을 어떻게 유도해 더 많은 맥락과 데이터를 끌어낼 수 있을지, 그리고 기존의 흐름을 최대한 해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을지 경험을 설계하는 일입니다. ‘설계력’, 그것이 AI 시대의 진짜 무기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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