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수 없는 중국의 로봇 굴기, 한국의 미래는?

[제로가 직접 말아주는 딥테크 이야기] 6-3. Made in China를 얕잡아 볼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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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22, 2025
멈출 수 없는 중국의 로봇 굴기, 한국의 미래는?

올해 5월, 중국의 로봇 굴기를 직접 체험하기 위해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카카오벤처스의 대표님 준, 그리고 슈퍼인턴 클레어와 함께 중국을 방문했는데요. 중국 현지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로봇을 체험해 보고, 로봇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상장사 여러 곳에도 방문해 현실 속의 로봇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 로봇

휴머노이드 로봇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로봇의 실내·실외 배송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중국 로봇 기업들의 앞으로의 방향성은 어떻게 설정되어 있는지 직접 목격하고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던 아주 유익한 출장이었습니다.

그럼 지난 글에 이어, 오늘은 점점 다가오는 중국의 로봇 굴기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이 글은 제로가 직접 말아주는 딥테크 이야기 6-1, 6-2화에서 이어집니다.


멈출 수 없는 중국의 로봇 굴기

지난번 2화 말미에서 로보틱스가 순항하기 위해서는 대량 생산 기반의 가격 경쟁력, 높은 수준의 전산학 기술, 그리고 압도적인 자본 투입 이 3박자가 모두 맞춰져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당장 3박자를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중국이라고도 이야기했는데요. 그 이유를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 카카오벤처스

생산도 잘하고 소비도 잘하는 중국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의 로봇 소비국이자 생산국입니다. 2022년 기준, 중국에 신규 도입된 로봇은 29만 300대로 1위를 차지했는데요. 11년 연속 전 세계 산업용 로봇 시장에서 5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중국은 지난 수년 동안 자체 로봇 부품 생산 생태계를 확보했습니다. 기존에는 일본과 미국이 로봇 하드웨어 부품 생산을 장악했었는데요.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중국의 자체 생태계 내에서 하모닉 감속기, 액츄에이터, 모터, 그리퍼, 배터리 등의 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많은 연구와 투자가 이루어졌고, 재작년쯤부터는 그 생태계가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고 판단됩니다. 물론 스펙만 놓고 보면 완벽한 1위는 아닙니다.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질 것을 감안하면, 중국은 완성된 생태계를 넘어 완벽한 생태계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중국 산업용 로봇시장의 중국산 제품 비중 추이

중국에서 제작된 로봇은 한국 시장에도 깊게 침투해 있습니다. 특히 서비스용 로봇은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보여주는데요. 국내 서빙용 로봇의 70%는 중국산이기도 합니다. 국산·미국산 서빙용 로봇 부품은 대부분 일본산 또는 미국산을 활용하는 반면, 중국 로봇은 자체 부품을 활용하거나 자국 내에서 저렴하게 조달할 수 있는 부품을 활용하기 때문에 원가가 훨씬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한국은 중국에서 수입한 로봇에 관세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 로봇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기도 하죠.

중국 서비스 로봇 생산량 2021-2022

날이 갈수록 돋보이는 중국산 로봇의 존재감

‘Made in China’가 늘 가장 저렴한 옵션이었던 역사를 떠올리면, 중국이 로봇마저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파는 건 놀랍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국이 저가 생산력 측면에서 압도적이라는 점을 차치해도 쉽사리 가시지 않는 질문 한 가지가 있는데요. “중국의 기술력, 정말 뛰어나긴 한 건가?”라고 묻는다면, 얕볼 수 없는 수준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학계도 산업계도 앓고 있어요

중국의 존재감학계에서도 산업계에서도 도드라집니다. AI 학계에서 중국의 비중은 미국과 동등한 수준으로 치고 올라왔고, 심지어 VLA 기반 로보틱스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CV(Computer Vision) 분야에서는 중국이 약우세한 상황입니다.

실제로 학회에 가도 “탑티어 학회를 미국에서만 진행하는 것은 앞으로 부담스러울 것이다. 비자 문제를 갖고 있는 중국 연구자들을 받아야 되기 때문에”라는 의견이 지배적일 정도인데요. 이렇듯 중국의 기술력 비중은 어마어마하게 높아진 상황입니다. 심지어 최근 UN 산하기관에서 발표한 글로벌 100대 AI 인재 중 57명이 중국인이죠.

학계에서도 중국의 비중이 점점 높아진다

산업계도 비슷합니다. 이미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NVIDIA(엔비디아)의 최대 고객 국가 중 하나가 바로 중국입니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방대한 수요가 존재하는 중국에 GPU 수출을 이어가야만 하는 상황인데요.

이러한 흐름은 향후 로봇에 탑재될 GPU, 또는 로봇 Foundation Model Training을 위해 판매하게 될 GPU 수요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요. 더불어, 메타,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도 중국 내 북경대, 칭화대 등의 탑티어 공대와 산학협력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중국은 기술 산업 내에서도, 시장 수요 측면에서도, 기업 R&D 측면에서도 이제는 중심 국가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최대 고객은 중국이다
중국을 놓칠 수 없는 엔비디아

중국의 로봇 굴기는
책상 위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Foundation Model로의 간극을 뚫을 수 있을까?

중국이 로봇 생산과 소비도 잘하고, 연구도 활발하며 기술력도 뛰어나다는 건 이제 충분히 확인했는데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로보틱스의 미래는 고도화된 AI가 탑재된 로봇을 대량 생산하는 수준을 뜻하는데요. 그럼 이렇게 질문해 볼 수 있겠죠. 중국은 Foundation Model 기반의 로봇까지 잘 만들 수 있을까요?

실제로 로봇에 탑재될 VLA(Vision-Language-Action) 모델을 상용화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과거 LLM이 그랬던 것처럼 엄청난 규모의 인프라가 필요합니다. 생각해 보면 LLM 경쟁에서 처음 앞섰던 건 구글이었는데요. 하지만 결국 시장에 가장 먼저 ‘깃발’을 꽂은 건 OpenAI였습니다.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GPU를 확보하고, 데이터 수집과 학습으로 GPT-3을 출시할 수 있었죠.

이렇듯 결국 AI 상용화의 승패인프라에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그 인프라는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GPU 인프라, 다른 하나는 데이터 수집 및 생성 인프라입니다.


1. GPU 인프라

앞서 언급했듯 엔비디아의 주요 매출처 중 하나는 중국입니다. 엔비디아가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을 싫어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데요. 그리고 엔비디아 매출의 3~40% 정도가 중국에서 발생한다는 건, 그만큼 중국의 GPU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져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바이두 등 중국 빅테크는 이미 GPT-4급 LLM을 자체 개발하고 상용화해 본 경험이 있는데요. Qwen이나 DeepSeek처럼 뛰어난 성능 또는 비용 효율이 뛰어난 LLM이 중국에서 연달아 출시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로보틱스에 활용될 뛰어난 성능의 VLA 모델 출시도 머지않았다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 기반이 되는 GPU 인프라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중국은 AI 굴기, 로봇 굴기에 이어 반도체 굴기까지 엄청난 화력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전 세계에서 반도체에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는 국가중국이기도 합니다. 이미 중국은 한국의 HBM3와 유사한 스펙의 메모리 반도체를 찍어내기 시작했는데요. HBM을 만들기 위한 기술력을 비교한다면, 가장 잘하는 한국과도 이제는 단 1년의 기술 격차가 날 뿐입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가 10년 가까이 벌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한국과 중국이 1등 자리를 놓고 기술 경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정도인 거죠.

더 놀라운 건, 모든 성과가 극도로 제한된 환경에서 나왔다는 점입니다. 중국은 무역 규제로 인해 반도체 초미세공정에 필요한 High-NA EUV 장비 없이 Legacy EUV 장비만 사용했는데요. 그런데도 유사한 수준의 미세공정까지 구현해 내는 노하우를 확보했습니다. 이렇듯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중국의 성장세는 어마무시한 수준입니다.

이렇듯 중국의 반도체 굴기와 상승세를 보면, 고스펙 GPU 수급이 제한적인 상황에서도 중국이 LLM이나 VLA 등 대형 AI 모델을 개발하고 상용화할 수 있었던 이유가 어느 정도 설명되는데요. 이러한 흐름이 계속된다면, 중국이 엔비디아급 성능을 갖춘 AI 전용 칩을 독자적으로 생산하는 미래도 머지않았다고 전망할 수 있겠습니다.


2. 데이터 수집 및 생성 인프라

GPU만큼 중요한 게 또 하나 있죠. 바로 데이터 수집 및 생성 인프라입니다. 지난 2화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로봇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는 양과 질을 모두 잡으며 생산하기가 어렵습니다.

2024년 12월 NIPS에 방문했을 때, 당시 ML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한 영상이 아주 화제였습니다. 중국의 AGIBOT이라는 스타트업이 학회가 진행되던 작년 12월 공개한 ‘메가 데이터 팩토리’에 관한 영상이었는데요. 중국이 엄청나게 많은 수의 로봇을 군단으로 생산하면서, 수십, 수백 대의 로봇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데이터도 수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만큼의 방대한 투자로 인프라를 만들고, 무언가를 찍어내는 것을 본 적이 없었거든요. 우스갯소리로 “중국은 병렬 연산이 필요 없다. 그냥 사람이 병렬적으로 다 한다”라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지난 번 소개한 세 가지 과제 중 하나, 그 어려운 로봇 데이터를 생산하고 확보하기 위한 인프라에 있어서도 중국은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고 있습니다.


투자와 자본이 밀어주는 굴기

중국이 앞으로도 로봇 굴기를 이어갈 수 있다고 보는 또 다른 이유는 신규 플레이어에 대한 투자 스케일과 속도입니다. 중국에서는 2021~2023년 사이 100억~1,300억에 달하는 시드 투자가 9건 이루어졌는데요. 로보틱스 스타트업 창업과 투자가 선순환을 이루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한국은 2024년 기준, 지난 5년간 시드 투자는 9곳, 100억 원대 규모의 투자는 2024년 홀리데이 로보틱스뿐이었습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목에 칼이 들어온 상황이나 다름없는 건데요. 한국과 달리 학계, 산업계, 스타트업계까지 3박자가 맞아떨어지는 중국을 보면, 오히려 로봇 굴기를 안 하는 게 이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중국 Top 20 VC 로봇 투자 수

이제는 부끄럽지 않은 Made in China

중국은 저가 노동 경쟁과 생산에서 이제는 압도적인 선진국이기 때문에 숨어 지낼 필요도 없습니다. 중국 내에서 로봇 생산비는 연간 40% 가까이 하락하는 수준인데요. 가격은 미국산 고성능 휴머노이드 대비 1/10에 해당합니다. 내수 시장만으로도 탄탄한 수요를 만들고, 그 안에서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하며 성장하는 로보틱스 시장인 건데요. 시간이 흐르고 노하우와 데이터가 쌓일수록 기술력은 더욱 강해지겠죠.

올해 중국으로 출장을 다녀오기 전, 2024 NIPS에서 중국의 Unitree G1과 미국 Tesla의 Optimus를 실제로 봤었는데요. 제가 느끼기에는 Unitree의 승리였습니다. Tesla Optimus는 무대 뒤에서 사람이 노트북으로 조작하며 로봇이 움직이는 연출만 진행했다면, Unitree는 군중 사이에서 로봇이 실제로 Live로 작동하면서 군중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유니트리 vs 테슬라
Unitree G1(왼쪽)과 Tesla Optimus(오른쪽)

‘양산’이라는 도돌이표

여기까지 내용을 읽으셨다면, ‘중국의 로봇 굴기를 압도하는 국가는 없는 건가?’라고 질문하실 수 있는데요. 오히려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그 단서는 테슬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 2화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로보틱스에서 넘어야 할 과제 중 하나는 양산입니다. 현재로서는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가내수공업 수준으로 로봇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로봇 상용화까지 실현하려면 대량 생산을 해야 합니다.

그 연장선에서, 한동안 양산에서의 우위 TeslaFigure AI가 가져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테슬라도 초기에는 “스타트업이 자동차 양산 라인을 만들 수는 없다”는 회의론 속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그 벽을 뚫었는데요. 지금은 완성 전기차 조립뿐만 아니라, 배터리까지 양산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테슬라는 이미 두 번씩이나 대형 복합 제품의 양산 인프라를 구축해 본 적이 있는데요. 그렇다면 과연 세 번째, 로봇 양산을 위한 인프라 구축은 불가능할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미국도 중국처럼 머지않은 미래에 3박자를 모두 갖춘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테슬라 로봇 양산

중국의 천하굴기를 저지할 수 있을까

몇 달간의 관세 유예 기간이 끝나고, 중국의 질주를 막기 위한 미국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정책에 시동을 걸었고, 동시에 중국은 AI 굴기, 로봇 굴기에 이어 반도체 굴기까지 전방위로 확장하고 있죠.

그렇다면 중국의 질주는 어디까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속도와 규모에 맞설 수 있는 국가는 존재할까요? 이런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한국은 어떻게 되는 건지 고민스럽기도 합니다.

Made in China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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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국가가 로봇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인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로봇의 등장으로 인간의 미래가 어떻게 달라질까 걱정하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은데요. 인간은 정말 로봇이라는 저렴한 노동력에 의해 대체될까요? 중국의 저가 노동력에서 비롯된 생산성 증폭으로 글로벌 산업 지형이 재편되고, 중국 외 제조업은 무너질까요?

저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로보틱스가 비추는 한국의 선택지

한국은 이미 저출산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언젠가는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해야 하는 순간이 올 수밖에 없겠죠. 이러한 현실 속에서 앞으로 두 가지 선택지를 고려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이민자를 받아들이며 점진적인 문화적 충돌을 경험하고 감수하는 것, 다른 하나는 기술적 보완을 통한 자동화로 인력 공백을 메우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단일 민족 국가로 살아온 역사와 사회적 정서를 고려하면, 한국은 후자의 방법론이 먼저 안착될 것 같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로봇이 생산력을 받쳐준다면, 인간은 고부가가치 노동에 집중할 수 있겠죠. 하지만 무작정 낙관만 할 수도 없는데요. 기술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고부가가치 노동을 수행하지 못하는 이들이 사회적으로 소외될 가능성도 물론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산업 차원에서 보자면, 한국 제조업은 조금 긴장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국이 고성능 로봇을 활용한 저가 생산 생태계를 빠르게 구축하고, 제조업 전반의 생산 원가를 획기적으로 낮춘다면, 지금보다 훨씬 저렴한 제품을 대량으로 찍어낼 가능성이 높아지겠죠. 우리가 AI에게 기대했던 ‘특이점(Singularity)’이 중국 제조업에서 먼저 실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중국의 로봇 굴기와 관련해 한국이 고민해야 할 실질적인 리스크는, 중국산 로봇이 국내 시장에 침투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 로봇을 기반으로 초저가 제조 경쟁에서 앞서 나가며 격차를 더 벌리는 상황입니다. 물론 기술 및 개인정보 보호나 지정학적 이슈 등으로 인해 중국산 로봇이 한국 제조업의 근간을 뒤바꾸거나 가정용 로봇으로까지 침투하긴 어렵겠지만요. 다만 한국의 근간 산업이 제조업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더 빠른 양산 체계와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에 밀리게 된다면, 더더욱 무역 관세와 같은 정치적 요소에 의존해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미 배터리 산업에서는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중국산 배터리 가격이 너무 저렴해지자, 미국은 170%라는 말도 안 되는 숫자를 관세로 부과했습니다. 그 덕분에 한국산 배터리는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시장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숫자들이 ‘지정학’이라는 필터를 통과하면 현실이 되기도 하는데요. 그리고 앞으로 이런 영역은 더욱 확장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 한국은 늦은 걸까요?

먼 나라 이웃나라 중국이 로봇 굴기에 속도를 올리는 가운데, 그렇다면 한국은 늦었을까요? 순순히 운명을 받아들이고, 로봇 종속국이라는 길을 속수무책으로 걸어가야만 할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로보틱스 산업은 이제 시작입니다. 그리고 로보틱스가 상용화되기 위해 필요한 Tech Stack 중에서는 여전히 비어있는 분야가 많습니다. 예컨대 LLM만 해도 전 세계적으로 상용화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LLM을 어떻게 더 활용할 수 있을지, 어떤 Middle Layer가 나와야 더 잘 쓸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는 것처럼요. 그렇기에 지금도 수많은 테크 스타트업과 파생 AI Agent 스타트업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죠.

로보틱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VLA 기반 로보틱스는 아직 상용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로보틱스 산업 생태계는 이제 막 만들어지기 시작한 단계고, 어떤 기술적 스택이 필요할지조차 많은 영역에서 새롭게 정립되어야 하죠. 이렇듯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상황 속에서, 새로운 로보틱스 스타트업이 등장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남아있다고 보고 있는데요. 그리고 언젠가 상용화되는 시점이 도래한다면,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어려운 규모의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입니다.

로보틱스 버티컬 테크 스택
ⓒ 카카오벤처스

모두가 이제 막 출발선에 선 시점

로보틱스를 LLM에 빗대자면, 지금은 성능 면에서 GPT-1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합니다. GPT-1에서 GPT-3에 이르기까지 모델 크기는 약 1,000배 팽창했고, 학습 데이터 규모도 수백 배로 늘어났으며, 수많은 기술적 Breakthrough가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GPT-4까지 이어지면서 추가적인 기술적 Breakthrough가 더 발생했죠.

이렇게 보면, 로보틱스는 42km 마라톤에서 첫 400m를 이제 막 달리기 시작한 상황에 가깝습니다. 지금 당장은 그 400m조차 따라잡기 벅차 보일 수 있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따라잡을 수 있다고 보는데요. 미국이든 중국이든, 사실상 모두 아직 출발선 근처에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경쟁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지금까지의 로보틱스 기술 경쟁은 본 경쟁이 아니라, 오히려 출발선에 서기 위해 기초 체력을 다지는 훈련에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도 지금이라도 출발하면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설령 따라잡지 못하더라도 출발은 해야 합니다. 제조업의 근간을 빼앗길 수는 없으니까요.

다행히 이미 출발한 것 같기도 합니다. 2025년 올해만 해도 국내에서 수많은 로보틱스 스타트업이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했는데요. 저희 카카오벤처스도 가장 활발하게 투자하는 분야 중 하나가 로보틱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실제로 많은 팀을 검토하며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할 수 있다

한국의 기술력과 시장은 절대 뒤처지지 않았다

이전 시리즈 1화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전자공학과 전산학의 시대에 등장했던 기술들은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앞으로 새롭게 재해석되어 활용될 수 있는 지속적인 유산에 더 가까운데요.

과거 KAIST의 Hubo Lab이 이끌었던 로코모션(Locomotion) 기술과 하드웨어(HW) 관련 기술은 지금도 후대 교수님들과 연구진들에게 이어져 연구되고 있고, 창업으로도 확장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만능처럼 보이는 VLA 모델도 특정 도메인이나 모빌리티 분야에 특화되려면, 결국 Deterministic한 알고리즘과 혼합해서 써야 하는 순간이 올 텐데요. 그 순간에는 HW와 알고리즘에 강한 인재를 보유한 한국 같은 국가가 더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죠. 한국이 지금껏 쌓아 올린 로봇 기술력은 결국 또 다른 방식으로 기초체력을 다지는 과정이었던 셈입니다.

이처럼 한국의 기술력은 결코 뒤처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중국의 저가 제조 경쟁은 위협이 될 수 있겠지만, 동시에 한국 역시 로보틱스에서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제조 강국이기도 합니다.

중국이 생산도 소비도 스스로 해내듯, 한국도 양쪽 모두를 소화할 환경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는 국가입니다. 로봇은 자동차보다는 작지만 백색가전보다는 큰 복합 제품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자동차도 가전도 잘 만들고 잘 파는 국가고요. 생산, 유통, 판매, CS까지도 노하우 관점에서는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마침 국내 제조 대기업도 로보틱스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요. 두산로보틱스와 한화로보틱스 같은 로봇 계열사를 운영할 뿐만 아니라, 삼성은 레인보우로보틱스, 현대는 보스턴다이나믹스에 투자하며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편 연구에 있어서도, 한국은 RT-X, OpenVLA, LAPA 등 주요 핵심 연구에서 1저자나 교신저자로 활약한 뛰어난 연구진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세계 로봇 분야 탑티어 학회 RSS, ICRA 등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죠. 단지 그 성과가 대중에게 보이지 않을 뿐, 그간 한국은 체급은 작더라도 길고도 치열한 싸움을 묵묵히 해왔던 겁니다.

어쩌면 지금 한국에게 필요한 것은 기초 체력을 이미 단단히 다져온 한국의 선수들이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믿고 밀어주는 파트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시리즈를 쓰는 내내,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며 마음이 두근거렸는데요. 개인적으로는 한국 기반 로보틱스 스타트업들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무척 기대됩니다.

물론 로보틱스 시대가 지금의 Hype처럼 단기간에 도래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 중간중간 고비도 분명 있겠지만, 그렇다고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로보틱스가 우리가 그토록 이야기해온 ‘특이점’의 시작이자, AI를 더 잘 쓰기 위한 새로운 하드웨어 플랫폼의 탄생에 대한 묵직한 해답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총 3편에 걸친 로보틱스 시리즈를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3화를 통해 처음 이 시리즈를 처음 접하셨다면, 아래 추천 콘텐츠에서 1화와 2화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앞으로 카카오벤처스와 저로부터 더 듣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다면, 카벤 링크드인과 유튜브에 의견 남겨주세요. 더 많은 이야기를 즐겁게 준비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카카오벤처스 김영무 심사역 (Zero)
카카오벤처스 김영무 심사역 (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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