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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음은 더 이상 돈이 되지 않는다

소비자의 행동비용이 사라진 뒤, 기업은 무엇을 설계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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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 Ventures
Oct 07, 2026
귀찮음은 더 이상 돈이 되지 않는다
Contents
귀찮음이 맡아온 세 가지 역할1. 선별: 행동 기반 가격차별2. 고착: 반복되는 재평가3. 배급: 잠재 수요의 현실화행동은 비슷해지고, 선호는 선명해진다사업의 재설계붙잡는 유지에서, 선택받는 유지로

3줄로 미리 보는 오늘의 인사이트

  • AI 에이전트는 정보를 찾고 판단하는 비용을 넘어, 비교하고 바꾸고 신청하는 행동의 비용까지 낮추고 있습니다.

  • 그동안 귀찮음은 소비자를 선별하고, 붙잡아두고, 요청을 걸러내며 기업의 마진·고객 유지·지급 비용을 지탱해왔습니다.

  • 소비자의 최적화가 상시화되면 기업도 기존 수익구조를 다시 계산해야 합니다. 경쟁력은 소비자가 더 많이 행동해도 수익이 남는 구조를 만드는 것에서 나옵니다.

2026년 4~6월, 영국 고용심판소에는 1만4천 건의 단일 청구가 접수됐지만 같은 기간 처리된 사건은 6,100건에 그쳤습니다. 6월 말에는 미처리 사건이 7만 건까지 쌓였죠. 영국의 고용심판은 부당해고나 임금 체불처럼 고용 과정에서 발생한 분쟁을 근로자가 제기하는 절차인데, 최근 AI를 활용해 자신의 권리를 확인하고 복잡한 청구서와 관련 서류를 작성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난 것입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에이전틱 플러딩(agentic flooding)’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시민들은 AI를 활용해 이전보다 훨씬 적은 시간과 비용으로 이의제기와 청구를 할 수 있게 됐지만, 공무원들의 처리 용량은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AI가 신청의 병목을 없애자, 기존에는 잘 보이지 않던 행정 처리 능력의 한계가 새로운 병목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이 구조는 행정에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장에도 사람들은 귀찮으면 행동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몇 천 원의 환급금은 굳이 청구하지 않고, 더 나은 조건이 있어도 기존 계약을 유지합니다. 쿠폰은 직접 찾는 소비자만 사용할 수 있죠. 서로 다른 현상처럼 보이지만 소비자가 행동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써야 한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AI 에이전트는 이 귀찮음의 비용을 줄입니다. 기존 생성형 AI가 무엇을 고를지 판단하는 데 도움을 줬다면, 에이전트는 판단 이후의 행동까지 대신합니다. 더 싼 보험을 찾는 데서 끝나지 않고 실제 변경을 처리하고,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챙기고, 잊고 있던 환급금을 청구하는 식입니다.

그동안 이런 귀찮음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었습니다. 소비자를 서로 다른 가격대로 나누고, 기존 상품에 머물게 하고, 실제로 들어오는 요청을 줄였습니다. 귀찮음을 전제로 짜인 시장에서는 행동에 드는 비용 자체가 기업의 경제성을 지탱하는 역할을 해왔던 것이죠.


귀찮음이 맡아온 세 가지 역할

세 가지 모두 행동 비용이 소비자를 구분하고 실제 수요를 조절해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에이전트가 이 비용을 낮추면 선별과 고착, 배급의 기능도 함께 약해집니다.

1. 선별: 행동 기반 가격차별

쿠폰은 모든 고객에게 할인하지 않고도 가격에 민감한 고객을 골라내는 장치입니다. 쿠폰을 찾고 등록하는 수고를 감수하는 사람에게만 낮은 가격이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몇 천 원을 아끼기 위해 시간을 쓰고 싶지 않은 사람은 정가를 지불해왔습니다.

AI 에이전트가 구매할 때마다 쿠폰과 포인트를 확인하면 이 둘을 행동으로 구분하기 어려워집니다. 가격차별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의 낮은 할인 사용률을 전제로 한 가격차별은 약해집니다.

단순한 계산만으로도 영향을 볼 수 있습니다. 정가 1만 원, 할인 전 마진 3천 원인 상품에 2천 원 쿠폰을 제공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쿠폰 사용률이 10%라면 평균 마진은 2,800원이지만, 사용률이 40%로 올라가면 2,200원으로 약 21% 줄어듭니다. 특히 새로 유입된 고객이 아니라 원래 정가에 구매했을 고객까지 에이전트가 쿠폰을 찾아준다면 추가 매출 없이 마진만 줄어듭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할인 사용률 자체보다 할인이 실제 추가 구매를 만들었는지입니다. 쿠폰을 넓게 뿌리기보다 신규 구매나 추가 구매처럼 기업이 원하는 행동과 혜택을 연결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2. 고착: 반복되는 재평가

기존 비교 서비스는 소비자가 직접 비교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에이전트는 한 번 설정한 조건에 따라 시장을 반복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비교가 간헐적인 행동에서 지속적인 재평가로 바뀌는 것입니다. 가입과 갱신 시점에 집중됐던 경쟁도 계약 기간 전체로 넓어집니다.

보험, 통신, 금융처럼 갈아타는 과정이 복잡한 시장에서는 더 나은 상품이 있어도 기존 계약이 유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높은 리텐션에는 상품이 좋아서 남은 고객과 바꾸기 귀찮아서 남은 고객이 함께 섞여 있습니다.

그만큼 예상 고객 유지기간도 짧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고객 한 명을 확보하기 위해 지출할 수 있는 비용도 달라집니다. 특히 가입 시 큰 혜택을 제공하고 장기간 이용으로 이를 회수하는 사업이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3. 배급: 잠재 수요의 현실화

귀찮음은 자격이 있는 사람 가운데 누가 실제로 요청할지를 정하는 문턱이기도 했습니다. 보험금과 환급금은 금액이 작거나 과정이 복잡해 포기하는 사람이 있었고, 민원 역시 서류와 절차에 드는 수고가 실제 요청을 줄였습니다.

에이전트가 신청을 대신하면 이 문턱은 낮아집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한 번의 신청이 쉬워지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죠. 거래 기록과 계약 조건을 계속 확인해 청구 가능한 상황을 찾아낼 수 있다면 잠재적인 청구·환급·보상 수요와 실제 요청 사이의 간격이 좁아집니다.

이때 기업이 감당해야 하는 것은 처리량 증가만이 아닙니다. 처리 업무는 AI로 자동화할 수 있지만 정당한 청구에 지급되는 비용까지 없앨 수는 없습니다. 낮은 청구율을 전제로 가격이 정해진 상품이라면 높아진 권리 행사율 자체가 상품의 수익성을 바꾸는 변수가 됩니다.

행동은 비슷해지고, 선호는 선명해진다

지금까지 관찰된 소비자의 행동에는 실제 선호와 행동비용이 섞여 있었습니다. 같은 보험을 5년 유지한 사람이 상품을 좋아해서 남았는지 바꾸기 번거로워서 남았는지는 알기 어려웠죠. 할인을 쓰지 않는 사람 역시 가격에 둔감한 것인지 쿠폰을 찾기 싫은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습니다.

에이전트가 비교와 변경, 신청을 대신하면 부지런한 사람만 최적의 선택을 하던 차이는 줄어듭니다. 반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차이는 남습니다. 행동비용 때문에 생겼던 차이는 줄고 실제 선호의 차이는 더 선명해지는 것입니다.


사업의 재설계

소비자의 행동비용 감소는 기업에는 마진, 고객 유지, 지급 비용의 변화로 돌아옵니다. 따라서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소비자의 행동률이 높아졌을 때 현재 사업의 어떤 전제가 가장 먼저 깨지는가입니다.

할인 사용이 늘면 일부 고객만 혜택을 찾는다는 전제로 만든 프로모션이 흔들립니다. 비교와 변경이 늘면 장기간 고객을 유지해 획득비용을 회수한다는 계산이 달라집니다. 청구가 늘면 낮은 권리 행사율을 전제로 설계한 가격과 보장 범위 역시 다시 계산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보면 에이전트는 소비자가 더 부지런해진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더 큰 변화는 에이전트가 이 행동을 반복한다는 데 있습니다. 소비자는 매번 더 싼 상품을 찾겠다고 결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조건을 한 번 정해두면 에이전트가 계속 비교하고, 조건이 맞을 때 행동합니다.

결국 기업이 확인해야 할 질문은 단순합니다. 소비자가 지금보다 훨씬 자주 비교하고, 바꾸고, 요구해도 현재 사업의 경제성이 유지되는가. 여기서 답이 ‘아니오’라면 다음 질문은 행동을 다시 어렵게 만드는 방법이 아니라, 높아진 행동률을 전제로 사업을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가가 됩니다.


붙잡는 유지에서, 선택받는 유지로

고객의 에이전트가 시장을 계속 비교한다면 기업도 특정 시점에 고객을 붙잡는 방식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보험은 갱신 때, 통신은 약정이 끝날 때, 구독은 해지 직전에 새 조건을 내놓아 왔습니다. 하지만 고객이 계약 기간에도 더 나은 조건을 계속 찾는다면 기업 역시 가격과 혜택을 고정해두기보다 고객의 상태에 맞춰 다시 계산해야 합니다.

여기서 사업개발의 선택은 단순히 혜택을 늘리는 것이 아닙니다. 고객의 어떤 가치를 지킬 지 판단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통신사가 실제 사용량에 맞는 더 저렴한 요금제를 먼저 제안하면 고객당 매출은 줄어들것입니다. 고객이 바꾸지 않아 얻던 수익을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죠. 대신 경쟁사로 이동할 가능성을 낮출 수 있습니다. 따라서 판단해야 할 것은 줄어드는 단기 매출보다 이탈 감소로 늘어나는 고객가치가 더 큰가입니다.

프로모션과 보험도 같은 논리입니다. 에이전트가 쿠폰을 빠짐없이 찾아 쓰는 환경에서는 할인 사용률 자체보다 할인이 실제 추가 구매를 얼마나 만들었는지가 중요해집니다. 보험에서는 청구율을 다시 낮추는 것보다 실제 권리 행사율이 높아져도 수익성이 유지되도록 가격과 보장 범위를 설계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집니다.

어디부터 바꿀지는 행동 변화가 손익에 가장 민감하게 닿는 곳을 기준으로 정할 수 있습니다. 할인 사용률에 따라 마진이 크게 흔들린다면 프로모션 구조가 우선입니다. 비교 빈도 증가로 고객 유지기간이 짧아진다면 획득·유지 구조를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청구율 상승이 수익성을 크게 떨어뜨린다면 가격과 보장 조건이 재설계 대상이 됩니다.

따라서 기업이 봐야 할 지표 역시 행동 자체에서 행동이 만들어낸 손익 효과로 이동해야 합니다. 할인 사용률보다 증분 구매가 늘었는지, 요금 인하로 줄어든 매출보다 이탈 감소로 얻은 고객가치가 큰지, 청구율이 높아진 뒤에도 상품의 수익성이 유지되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AI 에이전트는 소비자의 최적화를 상시화합니다. 따라서 기업의 재계산도 갱신이나 이탈 시점에만 일어나는 이벤트가 아니라 상시적인 운영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귀찮음이 더 이상 수익을 지켜주지 않는 시장에서 경쟁력은 소비자가 덜 행동하기를 기대하는 데서가 아니라, 더 많이 행동해도 수익이 남는 구조를 만드는 데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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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벤처스는 AI 서비스, 딥테크, 게임, 디지털 헬스케어, 뷰티 분야에서 필요한 미래를 앞당기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 캐피탈입니다. 초기 스타트업의 든든한 파트너로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창업가들에게 투자합니다.

Editor So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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