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 하나에 매달 구독료를 내는 사람들

웨어러블은 기능이 아니라 정체성을 판다
반지 하나에 매달 구독료를 내는 사람들

3줄로 미리 보는 인사이트

  • 웨어러블의 무게중심이 운동 측정에서 수면·회복·스트레스로, 손목에서 손가락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오라(Oura)는 기기 판매에 구독을 결합한 모델로 2026년 6월까지 9개월간 매출 12억 달러를 넘겼습니다.

  • 건강한 20~40대의 지갑을 열려면 질병 예방이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들이 돈을 내는 것은 퍼포먼스, 자기관리, 그리고 ‘나는 내 몸을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입니다.

  • 센서는 결국 비슷해집니다. 스타트업이 살아남는 길은 의학의 언어를 좇는 것보다, 사용자가 되고 싶은 자신을 정의해 주는 브랜드가 되는 데 있습니다.

숫자로 내 몸을 관리하는 사람들

아침에 눈을 뜨면 휴대폰부터 엽니다. 메일이 아니라 지난밤의 수면 점수를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깊은 잠은 몇 분이었는지, 심박변이도(HRV)는 어땠는지 살피고, 오늘 몸이 얼마나 회복됐는지를 보여주는 컨디션 점수도 확인합니다. 컨디션 점수가 낮으면 오늘은 조금 쉬어가고, 높으면 미뤄둔 운동에 나서기도 합니다. 반지가 측정한 체온 변화는 생리 주기 앱으로 넘어가 다음 주기를 예측하는 데 쓰입니다.

(이미지: 오라 앱 수면·레디니스 화면 + Natural Cycles 연동 화면 캡처)

카카오벤처스 블로그에서도 HRV가 바꿀 건강 관리 습관을 다룬 적이 있는데요. 숫자로 몸을 관리하는 이런 습관은 이제 일부 얼리어답터의 취미를 넘어 하나의 생활 방식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미국 디지털 헬스 투자·자문사 Rock Health가 2025년 말 미국 성인 8,000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6%가 웨어러블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체 응답자 중 스마트워치를 보유한 비율이 43%였습니다. 스마트링은 8%로 아직 작지만, 흐름은 시계라는 단일 폼팩터에서 다양한 형태로 세분화되고 있습니다.

측정하는 대상도 달라졌습니다. 몇 걸음 걸었고 몇 칼로리를 태웠는지에서, 얼마나 잘 잤고 얼마나 회복했고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로 관심이 옮겨 갔습니다. 하루 종일 차고 있어도 거슬리지 않는 반지가 이 변화에 잘 맞았던 셈이죠. Rock Health 조사 원문, 기기별 수치 인용 보도

웨어러블 중에는 혈압을 재는 의료기기나 연속혈당측정기(CGM)처럼 질환 관리를 목적으로 허가받은 제품도 있습니다. 이런 제품은 의사의 권유와 처방이 구매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별도의 시장입니다. 오늘은 소비자가 스스로 사서 차는 B2C 웨어러블에 집중합니다.


오라의 S-1이 보여준 것

스마트링 시장을 연 오라는 2026년 9월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다 시장 불확실성을 이유로 계획을 미뤘습니다. 상장은 멈췄지만, 그 과정에서 공개한 증권신고서(S-1)는 이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여주는 귀한 자료입니다. 오라의 증권 신고서첫째, 하드웨어와 구독이 다른 사업처럼 움직입니다. 2025년 10월부터 2026년 6월까지 9개월간 매출 12.1억 달러 중 반지 등 하드웨어 판매가 9.7억 달러, 구독이 2.4억 달러였습니다. 구독 비중은 아직 작지만 매출총이익률은 89%에 달합니다. 반지를 등록해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의 약 94%가 유료 구독으로 이어지고, 유료 회원은 전년 동기 250만 명에서 500만 명으로 두 배가 됐습니다. 반지는 고객을 들이는 입구이고, 구독은 높은 마진을 남기는 사업인 것이죠. 오라 S-1 — 사업모델·실적

둘째, 리텐션이 높습니다. 오라는 구독을 시작한 달을 기준으로 회원을 묶어, 12개월 뒤에도 유료 회원으로 남아 있는 비율을 공개했는데, 이 수치가 약 85%입니다. 매달 돈을 내는 구독 서비스에서 10명 중 8~9명이 1년 뒤에도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통상적인 운동 앱이나 다이어트 앱의 리텐션이 30%대임을 비교하면 꽤 놀라운 숫자입니다.. 오라 S-1 — Glossary의 유지율 정의

물론 숫자가 늘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수면 점수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오히려 잠을 설치는 현상을 가리키는 ‘오소솜니아(orthosomnia)’라는 말까지 생겼습니다. 숫자가 건강을 돕는 도구를 넘어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순간, 반지를 빼고 싶어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웨어러블은 정체성을 판다

웨어러블 시장을 들여다보면, 브랜드마다 파는 것이 꽤 다릅니다. 대표적인 브랜드와 제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오라·우프(Whoop):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의 세련된 감성을 팝니다. 실리콘밸리 창업자와 셀럽이 끼는 반지, 프로 선수가 차는 밴드라는 이미지죠.

  • 가민(Garmin): 철인 3종과 울트라마라톤을 뛰는 하드코어 운동러의 장비입니다. 배터리와 정확도, GPS 성능이 곧 브랜드입니다.

  • 애플·삼성: 스마트폰 생태계의 일부로 건강 기능을 제공합니다. 이 싸움은 플랫폼 기업의 영역이라, 스타트업이 정면으로 경쟁할 자리는 좁습니다.

  • 초저가 제품: 비슷한 센서를 훨씬 싼값에 팝니다. 가격 외에 내세울 차별점이 없다면 매력적인 시장이 되기 어렵습니다.

같은 심박과 수면을 재는데도 소비자의 선택이 갈리는 이유는 기능뿐 아니라 그 제품이 전하는 이미지에 있습니다. 가민 시계를 찬 사람은 “나는 진지하게 운동하는 사람”이라고, 오라를 낀 사람은 “나는 내 몸을 똑똑하게 관리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웨어러블은 단순한 측정 기기이기 전에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입니다. 컨슈머 헬스는 건강이라는 필요와 함께, 이런 욕구를 다루는 시장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무엇에 돈을 낼까

오라의 사용자층은 젊은 편입니다. S-1에 따르면 2026년 6월 기준 회원의 약 73%가 45세 이하입니다. 그런데 건강한 젊은 사용자를 겨냥할 때는 근본적인 딜레마가 있습니다. 바로 “이 기기를 쓰면 심근경색 위험이 줄어듭니다” 같은 임상적 효과를 단기간에 보여주기 어렵다는 점이죠. 당장 아픈 곳이 없다면, 예방의 효과를 체감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오라 S-1 — 회원 연령 분포

그래서 이들의 지갑을 여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더 좋은 컨디션으로 일하고 운동하고 싶은 퍼포먼스, 스스로를 돌보고 있다는 자기관리의 만족감, 그리고 그런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정체성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보험사도 이 흐름에 올라타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미국의 메디케어 어드밴티지(민간 노인 의료보험) 운영사 에센스 헬스케어는 2025년부터 일부 가입자에게 오라 반지와 구독을 무료 부가 혜택으로 제공하고 있고, 2026년에는 반지가 측정한 야간 호흡 데이터를 수면무호흡 위험군 선별에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층의 라이프스타일 기기가 보험사의 가입자 유치와 관리 도구로 쓰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2025년 혜택 제공 발표, 2026년 수면 건강 관리 확대 발표


의학의 언어를 탐내는 이유

이 기업들이 다음으로 노리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바로 의학적으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사실 웨어러블이 보여주는 숫자를 의학적으로 해석하는 데는 아직 빈틈이 있습니다. 오늘의 컨디션 점수는 물론이고, 그 바탕이 되는 HRV 같은 지표도 실제 건강 결과와 얼마나 연결되는지는 연구가 더 필요합니다. 더욱이 웰니스라는 것 자체가 상당히 주관적이다 보니, 의학적으로 입증하는 것 자체가 어렵죠. 앱에서는 ‘오늘 몸이 충분히 회복됐다’며 높은 점수를 줘도, 정작 나는 피곤하고 몸이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것처럼요.

그런데도 기업들이 근거 확보에 매달리는 이유는 웰니스 기기로는 할 수 없는 말, 즉 질환의 진단이나 치료·예방과 관련된 주장을 하기 위해 그에 맞는 근거와 규제 요건을 갖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직원 건강을 챙기는 기업, 보험사, 실제 생활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활용하려는 임상시험 기관을 설득하는 데도 객관적인 근거가 필요하고요.

그 경계에서 긴장이 생깁니다. 우프는 수면 중 데이터로 혈압 범위를 추정하는 기능을 내놨다가 2025년 7월 FDA로부터 허가 없이 의료기기를 판매하고 있다는 경고장을 받았습니다. 우프는 웰니스 기능이라고 맞섰고, 이후 FDA가 저위험 웰니스 기기에 대한 지침을 개정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우프가 기능과 표시 내용을 수정한 뒤, FDA는 2026년 6월 해당 기능에 의료기기 규제를 집행하지 않겠다는 종결 서한을 보냈습니다. FDA 경고장, FDA 종결 서한 의학의 언어를 빌리고 싶지만, 의료기기의 무게까지 지고 싶지는 않은 것이 이 업계의 솔직한 속내입니다.

또 하나의 질문도 남습니다. 의료 시장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반지를 끼게 만든 그 ‘힙함’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요? 실리콘밸리 창업자의 반지가 환자의 모니터링 기기로 보이기 시작하면, 젊은 사용자가 이 반지를 낄 이유도 함께 흐려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앞으로 더 큰 시장이 될 수 있는 노령층은 이 제품에 어떻게 반응할까요?

현실적인 제약도 존재합니다. 20~40대는 고령층에 비해 의료비 지출이 적은 편입니다. 젊은 사용자를 많이 확보했다고 해서 곧바로 큰 의료 수요를 확보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죠. 지금 웨어러블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20년 뒤 만성질환 관리에도 같은 기기를 쓸 것이라는 기대는 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를 기다리는 것이 당장의 생존 전략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젊은 사용자에게는 지금 필요를 느끼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심혈관질환의 장기적인 위험보다 생리 주기와 임신, 정신 건강처럼 당장 와닿는 영역을 공략하는 이유입니다. 반지의 체온 데이터를 활용하는 피임 앱 Natural Cycles와의 연동이 대표적입니다. Natural Cycles·오라 연동에 관한 FDA 심사 자료


결국, 무엇을 팔 것인가

센서와 하드웨어는 언젠가 비슷해집니다. 이미 수많은 제조사가 비슷한 반지를 더 싼값에 내놓고 있습니다. 결국 승부는 같은 데이터를 어떻게 포장하고 전달하느냐에서 갈립니다.

그래서 스타트업이 살아남는 길은 플랫폼 경쟁이나 저가 경쟁보다 이미지에 있습니다. 젠틀몬스터가 선글라스와 함께 취향과 세계관을 팔듯, 건강 기기도 기능을 넘어 ‘이 브랜드를 쓰는 나’를 팔아야 합니다. 하드웨어가 없는 소프트웨어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헬스케어와 비슷한 분야가 바로 교육입니다. 모두 건강과 지식이 중요한 건 알고 있지만, 그 과정이 고되고 괴롭기에 선뜻 돈을 내지 않는 분야이죠. 외국어 교육의 1타 앱으로 알려진 듀오링고 사용자가 매일 앱을 켜는 이유는 외국어 실력이 눈에 띄게 늘어서라기보다, "나는 매일 꾸준히 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확인하기 때문입니다. 연속 학습 기록이 끊길까 봐 자정 직전에 앱을 여는 경험,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물론 반지 하나가 모든 생체 신호를 잡을 수는 없습니다. 반지가 닿지 못하는 영역으로 측정을 넓히고, 사용자가 솔깃할 새로운 정보를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도 중요한 생존 방향입니다. 하지만 그 정보가 다시 사용자를 붙잡으려면 정확도에 더해 의미가 필요합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그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이 중요합니다.

웨어러블 시장에서 다음 기회는 더 정확한 센서보다, 사용자가 되고 싶은 자신을 정의해 주는 서비스에서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건강의 듀오링고는 아직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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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연 선임 심사역 (Jade) | Digital Healthcare

기술의 혁신과 효과적인 접근을 통해 사람들이 더 건강해지고, 일상이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료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가와 함께 고민하고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동반자가 되고자 합니다.

Editor So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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