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마음을 읽어내는 가격차별의 기술

일상 속 WTP 전략의 다양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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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24, 2025
사용자 마음을 읽어내는 
가격차별의 기술

비슷한 상품인데도 어떤 건 비싸게, 어떤 건 저렴하게 팔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지어 똑같은 상품이라도 판매처에 따라서, 혹은 고객에 따라서 가격이 달라지기도 하죠.

고전 경제학에서는 가격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고 설명하지만, 실제 시장은 그보다 조금 더 복잡합니다. 핵심은 개별 소비자의 지불 용의(Willingness to Pay, WTP)에 있습니다.

같은 제품이라도 어떤 고객은 프리미엄을 기꺼이 지불하는 반면, 다른 고객은 가격이 조금만 올라가도 구매를 포기합니다. 바로 이 차이가 기업에게는 가격 차별화의 기회가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스타트업은 이러한 지불 용의의 격차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WTP를 바탕으로 한 가격 전략의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가격차별의 세 가지 유형

가격차별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요. 경제학 용어는 다소 딱딱하지만, 실제로는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전략입니다.

1급 가격차별은 ‘완전 가격차별’이라고도 불리며, 말 그대로 각 소비자가 지불하고자 하는 최대 금액을 기업이 알고 있다는 가정하에, 개별적으로 최고 가격을 책정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에 가깝지만, 전자상가에서 “얼마까지 생각하고 오셨어요?”라고 묻거나 중고차 딜러가 고객에 따라 가격을 조정하는 상황이 이와 유사합니다. 물론 이때 무작정 가격을 높이 불러버리면 다른 매장의 저렴한 가격에 고객이 이탈할 수 있기 때문에 완벽한 1급 가격차별이라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

2급 가격차별은 소비자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여러 옵션을 제시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다시 두 가지로 나뉩니다.

  • 수량(quantity) 기반: 번들링 할인이 대표적입니다. “3개 구매 시 10% 할인”처럼 구매량에 따라 단가를 조정하여, 적게 사면 비싸게, 많이 사면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제시합니다. 조금 비싸도 적게 살지, 저렴하게 많이 구매할지 소비자가 직접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 품질(quality) 기반: 항공권의 클래스 구분(이코노미/비즈니스/퍼스트)이나 SaaS의 요금제(Basic/Standard/Premium)처럼 서비스 수준에 따라 가격을 차등화하는 전략입니다.

이는 적당히 구간을 나눠두고 고객이 자기 상황에 맞는 걸 고르도록 하는 겁니다.

3급 가격차별은 고객을 특정 그룹으로 분류해 각기 다른 가격을 적용하는 방식입니다. 2급이 상품을 세분화했다면, 3급은 고객을 세분화하는 접근법이죠. 시니어 할인, 학생 할인, 지역 주민 할인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합니다.

가격차별, 1급 가격차별, 2급 가격차별, 3급 가격차별

어떤 유형이든 가격차별의 목적은 다양한 지불 용의를 가진 고객들로부터 각각 최적의 가격을 받아내는 것입니다. 이는 공급자가 세분화된 소비자 그룹의 서로 다른 지불 용의를 예측하면서, 시장에 상품을 어떤 가격에 얼마나 풀지 결정하는 심리적 줄다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이 내는 사람에게 팔겠습니다

흥미롭게도 최근에는 공급자와 수요자 간의 게임이었던 ‘지불 용의’를, 제3자가 나서서 조정하려는 시도가 등장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의 예약권 거래 플랫폼 Appointment Trader입니다.

뉴욕의 인기 레스토랑은 예약 경쟁이 치열합니다. 크리스마스 디너 같은 특별한 날에는 수백 달러를 더 내고서라도 예약하려는 소비자들이 존재했고, Appointment Trader는 이 거래를 중개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공급이 제한된 자원을 더 높은 지불 용의를 가진 소비자에게 연결해 주는 구조는 경제학적으로 제법 합리적이죠. 실제로 2025년 4월 기준, 지난 12개월간 약 600만 달러 상당의 거래가 발생할 정도로 수요가 있었습니다.

Appointment Trader
ⓒ Appointment Trader

공급자 없는 가격차별의 한계

하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공급자인 레스토랑과의 합의가 전혀 없었다는 점입니다. 본래 무료로 제공되던 ‘예약’을 제3자가 상품화해 이익을 독점하는 구조는 운동화 리셀이나 콘서트 암표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었습니다. 미국 일부 지역에서는 암표 금지법(Scalping Laws)을 위반한다는 이유로 Appointment Trader의 불법화 움직임이 시작되기도 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공급자에게 추가로 발생하는 리스크였는데요. 콘서트 티켓의 경우 암표 구매자가 노쇼해도 공연은 그대로 진행되고, 티켓 판매금은 공연 주최 측에 전달된 상황입니다. 다른 수요자의 기회비용을 잃었을 뿐, 공급자에게 발생하는 치명적인 리스크는 없습니다.

하지만 레스토랑은 다릅니다. 높은 금액을 지불하고 예약권을 구매한 고객이 노쇼하면, 음식 주문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실질 수익을 레스토랑이 그대로 잃게 되는 구조입니다. 이 때문에 레스토랑의 반발이 심했죠.

창업자 Jonas Frey는 이에 대해 “Appointment Trader의 평균 노쇼 비율은 14% 미만으로, 업계 평균인 30%보다 오히려 낮다”고 설명했지만, 여전히 레스토랑 운영자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습니다.

결국 Appointment Trader는 트래픽의 절반 이상이 발생하던 뉴욕에서 법적으로 금지되었고, 뒤이어 플로리다와 루이지애나에서도 금지되었습니다. 다른 주에서도 금지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현재는 네덜란드와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으로 사업 영역을 이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성공하는 ‘줄 건너뛰기’ 비즈니스

그런데 같은 논리의 서비스가 성공하는 사례를 우리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로 놀이공원의 큐패스, 매직패스와 같은 프리미엄 이용권입니다.

기본 입장권과 ‘대기 줄을 건너뛸 권리’를 분리해 별도 판매하는 전략으로, 지불 용의에 따른 고객 세분화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시간보다 비용을 아끼려는 고객은 일반 이용권을, 비용보다 시간을 아끼려는 고객은 프리미엄 이용권을 선택할 수 있죠.

amusement park, 놀이공원
ⓒ Freepik

2016년 도입 당시 “돈으로 줄을 사는 것”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Appointment Trader와 달리 지금까지도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는데요. 핵심적인 차이는 공급자가 직접 가격과 수량, 조건을 설정하고 수익을 가져간다는 점입니다.

결국 ‘줄을 돈으로 사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누가 그 줄을 설계하고 관리하느냐가 성패를 가르는 핵심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 누가 돈을 많이 낼까

사실 지불 용의에 따라 가격을 다르게 매기는 전략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 아주 흔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핑크택스(Pink Tax):
성별로 나뉘는 지불 용의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예가 바로 핑크택스(Pink Tax)입니다. Gitnux에 따르면 여성용 면도기나 화장품 등은 남성용 제품보다 평균 7% 가량 더 비싸게 책정됩니다. 제품의 원가 차이는 거의 없음에도 “여성 소비자가 이 제품에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이런 현상은 사회적 관점에서 불합리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지만, 기업의 고객 세분화 전략 관점에서는 여전히 시장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핑크택스
ⓒ 이데일리M 이코노미스트

비즈니스 여행객:
구매 목적과 지불 주체에 따라 달라지는 지불 용의

항공권 가격 역시 같은 원리로 설명됩니다. 항공사는 가격차별 전략을 가장 적극적으로 업계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기본적인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르면, 좌석 수가 고정되어 있으니 수요가 몰릴수록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람들이 여행을 많이 떠나는 주말 항공편 가격이 높은 이유가 이 때문이죠.

그런데 항공사의 가격차별은 이렇게 단순한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미국 3대 항공사(아메리칸, 델타, 유나이티드)의 사례를 보면, 이들은 더욱 세밀한 기준을 적용하여 탑승료를 더 많이 낼 의향이 있는 비즈니스 여행객을 찾아내고자 합니다.

이코노미스트 조사에 따르면, 평일에 여행하는 1인 승객은 2인 승객보다 더 비싼 요금을 지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평일에 여행하는 1인 승객 = 출장객”이라는 가정 아래, 해당 고객군의 높은 지불 용의를 겨냥한 전략입니다. 출장 비용은 기업이 지불하고, 여가가 아닌 필요에 의한 이동이기에 금액이 올라가도 티켓을 구매할 것이라는 계산이죠.

💰

평일 1인 탑승권, 2인 탑승권보다 비싸다!

  • 사우스캐롤라이나 그린빌에서 노스캐롤라이나 샬럿까지 가는 금요일 도착 왕복 티켓의 경우:

    • 1인 승객은 $811을 지불

    • 2인 승객은 1인당 $565를 지불

  • 토요일 도착으로 바꾸면 승객 수와 관계없이 1인당 497달러를 지불

*인원에 따른 가격 차별을 가장 적극적으로 운영 중인 아메리칸 항공의 사례

정리하자면 가격차별은 특정 기업만의 독창적인 전략이라기보다, 이미 많은 곳에서 사용되고 있는 하나의 선택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객의 지불 용의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밀한 가격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면 도입해 볼 법한 방법이죠.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다양한 가격 차별 방식은 이미 시장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번들링 할인이나 항공권 클래스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고, 놀이공원 프리미엄 이용권이나 핑크택스처럼 논란을 낳으면서도 여전히 활용되는 사례도 있죠.

Appointment Trader는 발상은 합리적이었지만, 공급자와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된 구조가 문제였습니다. 만약 레스토랑과 협력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면 다른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결국 관건은 가격차별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있습니다. 공급자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사용자에게 합리적인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강력한 성장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런 요소가 없다면 시장의 저항에 부딪히기 쉽습니다.

가격 결정에 원가 계산을 넘어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합니다. 이해관계자의 심리, 사용자의 구매 맥락과 지불 용의를 읽어낼 수 있다면, 수익 극대화를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아볼 수 있죠.

WTP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비즈니스를 한 번 되돌아본다면,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기회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본문에서 다루지 못한 질문이나 의견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자유롭게 공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카카오벤처스 투자팀의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커뮤니케이션팀 에디터 인턴 Chloe가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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