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를 위한 리튬 치료제, 환자 데이터로 미리 검증할 수 있을까

더 나은 치료법을 탐구하는 또 하나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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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29, 2025
치매를 위한 리튬 치료제, 
환자 데이터로 미리 검증할 수 있을까

요즘 학계와 대중의 시선을 동시에 사로잡은 한 연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Lithium Defiency and the Onset of Alzheimer’s Disease(리튬 결핍과 알츠하이머 질환의 습격)라는 제목의 논문입니다.

하버드 연구팀은 이 논문을 통해 알츠하이머 발병 및 진행 과정에서 뇌 내 리튬 결핍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알츠하이머병 예방 및 치료를 위한 리튬 기반 화합물 개발의 가능성을 의미하기 때문에, 향후 임상시험을 통한 검증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연구가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큰 관심을 받았는지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논문의 대중적인 영향력을 보여주는 Almetric 점수는 무려 3,095점을 기록했는데요. 20점만 넘어도 평균 이상으로 평가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주 이례적인 수치입니다. 실제로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논문 30만 편 중 상위 1%(11위)에 해당하는 점수이기도 하죠.

Lithium deficiency and the onset of Alzheimer's disease, Almetric
ⓒ Almetric

나아가 관련 내용이 315개의 뉴스 매체에 보도되었다는 점, 그리고 Google Trends에서 확인한 ‘alzheimer lithium’ 키워드의 검색량 그래프가 논문 발표 이후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을 보면, 이 연구는 말 그대로 뜨거운 감자임이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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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ogle Trends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유튜브 댓글창이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면, 사람들의 관심은 실제로 리튬을 직접 복용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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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대중의 폭발적인 반응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충격적인 논문 발표에 따른 단순한 해프닝일까요, 아니면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데이터일까요?

오늘은 이 현상 속에서, 신약 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미리 엿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단서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하버드 연구가 발견한 새로운 인과:
알츠하이머병과 리튬

기존 알츠하이머 연구는 뇌에 축적되는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라는 단백질을 질병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개발된 대부분의 치료제 역시 이 단백질들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췄죠.

이러한 접근은 아밀로이드 플라크 등 단백질 덩어리 감소에는 어느 정도 효과적이었지만, 이에 동반되는 인지 기능 저하는 불가피했습니다.

💡

단백질 응집체가 알츠하이머병에 미치는 영향

  • 아밀로이드 플라크: 아밀로이드(amyloid)라는 작은 단백질이 정상적으로 분해되지 않고 뭉쳐진 미세 덩어리

    → 뇌 조직에 염증과 손상을 일으킴

  • 신경섬유다발: 타우(tau)라는 단백질이 세포 안에 뭉쳐진 덩어리

    → 신경세포의 신호전달 능력을 떨어뜨리고 결국 뇌세포를 사멸시킴

최근 하버드 연구팀은 Nature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새로운 가설을 제시했습니다.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의 축적은 질병의 원인이 아닌 결과라고 설명하며, 그 진짜 원인으로 ‘뇌 속 리튬 결핍(Lithium Deficiency)’을 지목한 것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리튬은 오래전부터 양극성 장애 치료에 활용될 만큼 정상 뇌 기능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원소였습니다. 그런데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서는 이 리튬이 단백질 응집체에 결합하여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리튬 ‘결핍’ 상태가 된다는 것이죠. 이로 인해 신경세포의 손상과 염증 등 연쇄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 연구의 핵심입니다.

알츠하이머병과 단백질 응집체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리튬의 종류에 따른 차이입니다. 과거 루게릭병 치료 연구 등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리튬 카보네이트는 아밀로이드 플라크에 잘 결합하여 뇌세포에 리튬을 효과적으로 보충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기존에 영양 보충제 등으로 사용되어 온 리튬 오로테이트는 플라크에 덜 결합하여 뇌에 더 효율적으로 리튬을 공급할 수 있죠.

앞선 가설을 바탕으로 이미 알츠하이머가 발병한 쥐에게 리튬 오로테이트를 투여한 결과, 놀랍게도 질병의 진행 억제를 넘어 손상된 인지 기능이 회복되는 가역적 변화가 관찰되었습니다. 이는 알츠하이머를 퇴행성 질환이 아닌, 치료 가능한 대사 질환으로 볼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뇌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치료 가능성까지 제시했기 때문에 그렇게나 큰 주목을 받았던 것이죠.

하지만 이토록 유망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10여 년 전, 비슷한 기대를 모았던 한 사건이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기 때문입니다.


한 발 빠르게 상관관계를 찾아내는 환자 데이터:
루게릭병과 리튬

약 10년 전, 루게릭병(ALS) 분야에서도 리튬을 둘러싸고 비슷한 기대와 논란이 있었습니다. 당시 발표된 44명의 소규모 루게릭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파일럿 연구에서, 저렴하고 흔한 물질인 리튬이 질병의 진행을 획기적으로 늦췄다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루게릭병은 치료법이 전무했기 때문에 이 소식은 전 세계 환자 커뮤니티에서 꽤나 큰 이슈를 일으켰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환자들은 더 이상 수년간 진행될지도 모르는 대규모 임상 시험의 결과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들은 의사에게 허가 외 처방을 요청하여 리튬을 복용하기 시작했고, PatientsLikeMe와 같은 환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복용량, 혈중 농도, 부작용, 질병 진행 상태 변화를 기록하고 공유했습니다.
 

patientslikeme
ⓒ PatientsLikeMe | 사용자가 직접 증상을 기록할 수 있는 프로필 페이지


기대감에 들떴던 초반과는 달리, 커뮤니티의 분위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달라졌는데요. 초기에는 희망 섞인 후기도 있었지만, 이내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현실적인 경험담이 주를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공식적인 분석이 없었음에도, 커뮤니티 내에서는 이미 회의적인 여론이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죠.

이러한 커뮤니티의 집단적 직관은 3년 뒤 데이터로 증명됩니다.

2011년 Nature Biotechnology에 발표된 논문에서는 오프라벨, 즉 허가 외 목적으로 리튬을 복용한 348명의 루게릭병 환자가 PatientsLikeMe에 등록한 데이터를 표준 치료군*과 비교**한 결과 리튬군의 질병 진행 지연 효과가 없음이 경험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사전에 커뮤니티에서 형성된 여론과 동일한 결과를 객관적인 데이터로 입증한 것이죠.

🫠

리튬, 루게릭병에 치료 효과가 없다고?

*표준 치료군: 루게릭병 치료를 위해 기존에 승인된 약물 ‘릴루졸(riluzole)’을 복용하는 환자들 중 PatientsLikeMe를 사용하지 않는 환자들의 데이터

**상태 악화, 개개인의 상태에 따른 경과 편차를 고려하여 비슷한 상태의 사람들을 알고리즘으로 매치하여 비교

그로부터 2년이 더 지난 뒤, 영국(LiCALS 연구)과 미국 등지에서 수백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수년간 진행된 대규모·무작위·이중맹검 임상시험(RCT)의 결과 역시 ‘효과 없음’이라는 동일한 결론을 내놓으며 이 길었던 논란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이렇듯, 아무리 유망해 보이는 발견이라도 새로운 증명을 통해 언제든 논리가 뒤집힐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단정적인 결론보다는 가능성을 차근차근 검증해 나가는 신중한 접근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루게릭병 사태의 교훈을 바탕으로 맨 처음의 질문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알츠하이머-리튬 연구를 둘러싼 이 뜨거운 반응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성급한 기대’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루게릭병의 선례를 통해 우리는 커뮤니티에 축적된 데이터가 때로는 공식적인 연구보다 빠르게 가설을 검증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짧게는 2년, 길게는 무려 5년이나 말이죠.

개인의 건강 데이터를 쉽게 모으고 분석할 수 있는 시대이기에, 알츠하이머-리튬 연구를 둘러싼 이 거대한 관심은 단순한 소음을 넘어 초기 연구의 잠재력을 가늠하는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가령 알츠하이머 환자 중에는 우울증이나 양극성 장애를 동반하여 이미 리튬을 복용 중인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이들의 데이터를 선제적으로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비용이 드는 임상시험 전에 가설의 유용성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커뮤니티의 목소리가 항상 정답은 아닐 것입니다. 루게릭병의 사례처럼 기대가 실망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신약 개발의 과정이 단순히 실험실과 임상시험 현장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환자와 대중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데이터의 흐름 속에는 분명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신호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어쩌면 더 나은 치료법을 향한 길을 조금 더 빨리 찾아낼 수 있는 또 하나의 나침반을 얻는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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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벤처스 투자팀의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투자팀 인턴 Delphi와 커뮤니케이션팀 인턴 Chloe가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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