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는 어떤 사이트에서 예약해도 마일리지를 적립해 주는데, 호텔은 왜 공식 홈페이지에서만 포인트를 적립해 줄까?
항공권은 무조건 미리 결제해야 하는데, 호텔은 왜 나중에 결제하는 옵션이 많을까?
숙박 예약 사이트의 수수료는 왜 항공 예약 사이트보다 더 비쌀까?
여름 휴가철이 한창인 요즘입니다. 많은 분들이 여행 계획을 세우고 계실 텐데요, 여행을 준비할 때 반드시 해야 하는 두 가지 일이 있죠. 바로 항공권 예약과 숙소 예약입니다.
이 두 가지는 보통 연달아 처리하기 때문에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묘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떠올려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
단순한 운영 정책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산업 구조와 업의 본질에서 비롯된 차이는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이번 글에서는 Jonathan A. Knee의 『플랫폼 제국의 거인들(The Platform Delusion)』 11, 12장을 바탕으로, 이 모든 현상 뒤에 숨어 있는 하나의 비밀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같은 여행업, 다른 상품
우리가 목격한 차이는 사실 상품 공급 구조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기본적으로 비행기 좌석과 호텔 객실은 모두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0이 되는 소멸성 재화입니다.
따라서 항공사와 호텔은 출발일이나 숙박일 전에 반드시 상품을 판매해야 하고, 더 많은 고객에게 노출되기 위해 이들은 OTA와 같은 중개 채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출발점이 같다고 OTA와의 관계 역시 같은 것은 아닙니다.
(1) 항공사: 희소성의 힘
머릿속에 항공사를 한 번 떠올려 보시겠어요?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같은 대형 항공사, 혹은 진에어나 티웨이 같은 저가 항공사 정도가 바로 생각나실 겁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이름이 쉽게 떠오르는 항공사는 몇 개 되지 않죠. 이는 곧 항공 산업의 플레이어 자체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항공업은 항공기 운용, 유지 보수, 연료비, 인건비 등 막대한 고정비가 투입되는 사업입니다. 초기 투자 규모가 크고, 안전 관리에도 지속적인 비용이 들어가죠. 여기에 하루 운항 가능한 노선 수와 국가 간 슬롯 배분도 한정적이라, 시장 진입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그 결과 시장에 이미 존재하는 소수의 항공사는 자연스럽게 강한 협상력을 얻게 됩니다. 물론 항공사도 좌석을 팔기 위해 OTA가 필요하지만, OTA 역시 다양한 항공편을 확보해야 하기에 개별 항공사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죠.
바로 이 희소한 공급 구조 덕분에 권력의 무게추는 항공사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2) 호텔: 과잉경쟁의 지배
한편 호텔 시장은 항공 시장보다 훨씬 더 파편화되어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대형 항공사는 몇 손가락 안에 꼽히지만, 호텔은 체인 브랜드뿐 아니라 독립 호텔, 소형 숙소, 민박까지 형태가 다양하고 그 수도 압도적으로 많은데요. 이러한 공급자의 분산 구조는 OTA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토대가 됩니다.
OTA는 수많은 숙소를 한데 모아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지와 비교의 기반을 제공합니다.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집객력'은 플랫폼의 핵심 무기가 되는데요. 공급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플랫폼은 더 강해지고, 집객력을 근거로 OTA는 수수료율이나 정책 조건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습니다.
서로 다른 고객 여정의 비밀
결국 항공사와 호텔은 같은 여행 산업 안에서도 전혀 다른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항공사는 공급자 수가 적어 강한 이해관계자가 되고, 호텔은 수많은 공급자 속에서 플랫폼 네트워크에 의존할 수밖에 없죠.
이러한 힘의 균형 차이는 산업 구조를 넘어, 실제로 고객이 예약 과정에서 마주하는 여정 전반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1) 마일리지의 두 가지 목적
마일리지는 흔히 고객을 붙잡기 위한 장치로 이해되는데요, 항공사와 호텔은 이를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항공사는 어떤 채널을 통해 예약하든 동일하게 마일리지를 적립해 줍니다. 얼핏 보면 관대한 서비스처럼 보이지만, 철저한 계산에서 나온 정책입니다. OTA에 지불하는 수수료보다 고객의 재방문과 장기적 락인이 더 가치 있다고 판단한 것이죠.
한 번 마일리지로 묶인 고객은 어떤 경로로 예약하든 다시 그 항공사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항공사 입장에서는 OTA 예약에도 마일리지를 허용하는 편이 더 많은 접점에서 효율적으로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전략이 됩니다.
반면 호텔은 공식 홈페이지 예약에만 포인트 적립 혜택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OTA를 통한 예약이 늘어날수록 수수료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고객을 직접 유입시켜 비용을 줄이려는 목적이 큽니다. 결국 호텔의 마일리지는 고객 락인을 위한 수단일 뿐 아니라, 플랫폼 의존도를 줄이고 수익성을 방어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합니다.
(2) 항공권의 선결제, 호텔의 당일 결제와 무료취소
항공권 예약에서는 선결제가 원칙입니다. 이는 단순히 업계의 관행이 아니라 항공업의 구조적 특성에서 비롯되었는데요. 앞서 말했듯이 항공업은 상당한 고정비가 수반되는 사업입니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조기 현금 흐름을 확보하는 것이 생존과 직결되기에, 선결제가 기본 결제 방식이 된 것입니다.
호텔은 이와 상황이 다릅니다. 시장의 경쟁이 치열한 만큼 고객에게 당일 결제와 무료 취소라는 유연성을 제공해야 합니다.
호텔 예약은 가격, 위치, 편의시설, 후기, 청결도, 조식 유무, 체크인/체크아웃 시간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아 소비자가 ‘보류 상태’로 선택지를 남겨두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특히 여행 일정 변경이 잦은 비즈니스 여행자에게 무료 취소 옵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조건입니다.
호텔이 이런 정책을 수용하는 이유는 항공사와 다른 손실 구조에도 있습니다. 급하게 숙소가 필요한 상황은 자주 발생하지만, 급하게 항공권이 필요한 경우는 드물죠. 따라서, 호텔은 취소된 객실을 당일 워크인 고객에게 판매할 기회가 있어 항공권보다는 유연한 정책이 가능합니다. 미리 취소를 받는 것이 노쇼(no-show)보다 운영상 훨씬 유리한 구조인 셈입니다.
수수료가 드러내는 권력 구조,
플랫폼의 기회
항공사와 호텔의 협상력 차이는 수수료 구조에서도 드러납니다. 호텔은 OTA에 15~30%의 높은 수수료를 지불하고, 그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식 홈페이지 예약 고객에게 추가 혜택을 제공하고는 합니다. 반면 항공사는 국내선 0~5%, 국제선 10~20%로 상대적으로 낮은 비율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OTA 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한 걸까요? 호텔은 OTA 없이는 고객 확보가 어려운 구조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OTA는 단순한 유통 채널을 넘어 사실상의 마케팅 플랫폼으로도 기능합니다. 부킹닷컴과 익스피디아가 각각 매년 약 50억 달러를 마케팅에 지출하며, 그 대부분이 구글로 향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OTA는 막대한 마케팅 투자로 고객을 끌어오고, 호텔들은 이에 의존해 예약률을 높이는 구조에 묶여 있는 셈입니다.
이처럼 높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호텔들이 OTA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구조가 플랫폼 비즈니스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호텔이라는 약한 이해관계자가 많은 시장이 플랫폼에는 오히려 성장의 기회를 제공했던 것입니다.
초기 항공권 OTA로 출발한 ‘프라이스라인’은 이 구조를 빠르게 파악해 사업을 확장했고, 그 결과 지금의 글로벌 1위 여행 플랫폼 ‘부킹닷컴’으로 성장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세 가지 현상은 모두 강한 이해관계자 vs 약한 이해관계자라는 하나의 논리로 설명됩니다.
💡
강한 이해관계자(항공사)는 자신만의 룰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어디서 예약하든 마일리지 제공 (고객 락인 우선)
무조건 선결제 (현금 확보)
상대적으로 낮은 플랫폼 수수료 (의존도 낮음)
약한 이해관계자(호텔)는 시장과 플랫폼에 맞춰야 합니다.
직접 예약만 포인트 적립 (플랫폼 견제 필요)
유연한 결제와 취소 정책 (고객 니즈 수용)
높은 플랫폼 수수료 (의존도 높음)
항공과 호텔은 모두 여행의 필수 요소지만, 힘의 흐름은 다르게 나타납니다. 항공권은 공급자가 제한적이어서 항공사가 주도권을 갖고, 숙소는 분산된 시장 구조 때문에 플랫폼이 더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죠.
마일리지, 결제·취소 정책, 수수료 구조까지 이 차이는 일관되게 드러납니다. 결국 여행 산업의 차이를 가르는 것은 서비스 자체뿐만이 아니라, 상품의 속성과 시장 구조가 어디에 힘을 실어주느냐입니다. 이런 시각은 여행 산업을 넘어 다른 플랫폼 비즈니스에도 적용할 수 있는 중요한 힌트가 됩니다.
본문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생각이나 경험이 있다면, 자유롭게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인사이트 | 카카오벤처스 투자팀
제작 | 커뮤니케이션팀 에디터 인턴 Bailey & Chloe
앞으로도 함께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