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스타트업이 꼭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해자는 경쟁자가 쉽게 따라올 수 없도록 만드는 방어 전략을 말합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씩 쏟아지는 사업 아이템 중에서 살아남는 한 가지가 되기 위해서는 차별화 포인트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은 조심스럽게, 이 해자가 전부는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기업이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경쟁력뿐만 아니라 사업의 안정성, 즉 “돈이 어디서 들어오는가”가 명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투자로도 단기 자금을 조달할 수는 있지만, 결국 스스로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지속 가능한 사업이 됩니다. 이때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를 설명하는 구조가 바로 비즈니스 모델(business model)입니다. 해자가 경쟁자를 막는 방패라면, 비즈니스 모델은 스타트업을 움직이는 엔진이라고 할 수 있죠.
겉으로 보이는 상품과 실제로 돈이 만들어지는 지점이 일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기업도 있는데요. 그 숨겨진 비즈니스 모델의 비밀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내부 비용을 판매용 상품으로, AWS
어떤 기업들은 사업 영역의 구조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합니다. 예를 들어 이커머스는 저마진·고비용의 구조를 가집니다. 물류·배송·포장·재고 관리 등 고정비가 많이 들어서 이익률을 끌어올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죠. 글로벌 이커머스 아마존은 비즈니스 모델의 전환을 통해 이 약점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아마존은 전자상거래 운영을 위해 서버·스토리지·컴퓨팅 인프라를 구축했는데요. 블랙프라이데이나 홀리데이 시즌 등 이용량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성수기를 대비하기 위해, 평소에는 쓰지 않는 서버까지 큰 비용을 들이며 유지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발생한 비용 비효율을 해결하기 위해 내부 클라우드 인프라를 외부 고객에게도 판매하기로 했습니다. 이미 구축된 인프라에 큰 변동비 없이 추가 고객을 유치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 결과 기존에는 고스란히 내부 비용으로 떠안고 있는 인프라를 고마진 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AWS(Amazon Web Services)는 특정 사업의 필수 인프라를 아예 새로운 사업 축으로 바꾼 사례입니다. 2024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AWS는 아마존 전체 매출의 16.8%를 차지하는데요. 영업이익은 전체의 약 58%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매출 비중은 작아도, 기업 전체를 움직이고 유지시키는 핵심 엔진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그러니 아마존은 겉으로는 쇼핑몰 기업이지만, 실제로는 클라우드 인프라 회사에 가깝습니다. 한 사업의 비용 구조를 완전히 새로운 수익 구조로 재설계한 것이죠.
햄버거가 아닌 땅을 파는 맥도날드
세계적인 기업 맥도날드(McDonald’s) 역시 두 번째 비즈니스 모델을 안전장치로 삼은 유명한 사례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맥도날드는 전형적인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입니다. 버거를 만들고, 감자튀김을 팔고, 전 세계에 매장을 늘리면서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전문가들이 보는 맥도날드는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맥도날드를 세계 최대의 부동산 회사 중 하나로 분류하는데요. 맥도날드는 사실 햄버거 매출과 가맹점 로열티로만 수익을 얻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맥도날드는 420억 달러 이상의 부동산 자산을 기반으로, 가맹점주를 대상으로 부동산 임대업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 등 주요 국가에서는 가맹점주가 맥도날드 매장을 열기 위해 맥도날드가 소유하거나 장기 임차한 부지와 건물을 ‘빌려’ 사용해야 하죠. 점주는 매달 임대료를 내고, 본사는 안정적인 임대 수익을 확보하는 구조입니다.
2024년 맥도날드 리포트에 따르면, 전 세계 43,477개의 지점 중 약 95%는 프랜차이즈이며, 이 매장들이 위치한 부동산 중 토지의 약 56%, 건물의 약 80%를 맥도날드 본사가 직접 소유하고 있습니다. 패스트푸드 체의 모습 뒤에 부동산 포트폴리오가 자리하고 있는 셈이죠.
맥도날드의 전 CFO였던 Harrry J. Sonneborn은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우리는 사실상 요식업이 아닙니다. 대신 우리는 부동산 사업을 하고 있어요. 우리가 15센트짜리 햄버거를 파는 이유는, 그게 우리의 세입자들이 돈을 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우리에게 임차료를 지불하죠.”
이 강력한 구조 덕분에 맥도날드는 식자재 가격이 오르거나 소비 심리가 위축되는 등의 경기 변화와 관계없이 일정한 현금 흐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저마진·고변동성 사업인 햄버거 판매에서 벗어나, 경기 변동에 강한 고마진·고예측 사업(부동산 판매)을 핵심 축으로 삼게 된 것입니다.
항공사, 마일리지 없으면 적자라고?
항공업 역시 유가·경기 변동에 민감하고, 항공기와 시설에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고위험 산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공사들은 안정적인 수익을 위해 금융업과의 제휴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왔습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마일리지 판매로 운영되는 로열티 프로그램입니다.
미국의 델타항공은 한 해 약 60억 달러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업계 최고 수준의 수익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코노미스트 분석에 따르면, 로열티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이들의 사업은 오히려 적자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항공 비즈니스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비행기 티켓이 아니라 마일리지 포인트라는 것입니다.
이 로열티 비즈니스는 항공사, 카드사, 소비자를 묶어 모두에게 윈윈(win-win)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항공사는 카드사에 마일리지를 판매해 현금을 우선적으로 확보하고, 카드사는 이를 카드 이용 혜택이라는 충성도 장치로 사용합니다. 사람들은 항공권이나 부가 서비스를 마일리지로 결제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항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죠.
2024년 기준 델타항공의 로열티 프로그램은 38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벌어들인 것으로 집계됩니다. 이 거대한 수익 규모는 항공사가 겉으로는 운송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금융화된 로열티 사업으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본업인 항공권 판매가 외부 변수에 크게 흔들리는 만큼, 로열티 프로그램은 사실상 항공사의 ‘숨은 본업’에 가까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끼를 던지고 수익을 낚는 기업들
앞선 기업들은 겉으로는 한 가지 사업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업 간 거래를 통해 별도의 정기 수익원을 만들어낸 사례들입니다. 한편, 사업 아이템과 고객군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판매 방식과 상품 구성을 재설계해 수익 구조를 바꾸는 기업들도 있습니다.
(1) 식자재로 사람을 모으고, 멤버십으로 돈을 번다: 코스트코
코스트코의 매출 대부분은 상품 판매에서 발생합니다. 그러나 가장 안정적인 수익 축은 바로 멤버십 회비인데요. 2023년 기준 멤버십 회비는 총매출의 약 2% 수준(약 46억 달러)에 불과하지만, 영업이익의 비중으로 보면 무려 59% 가량을 차지합니다.
저마진 리테일은 고객 유입을 위한 일종의 ‘미끼 상품’이고, 실질적인 수익은 매년 반복해서 들어오는 구독료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죠. 이 멤버십 수익은 경기 변동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기 때문에, 코스트코는 상품 판매 성과와 관계 없이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2) 상품을 쪼개어 다시 파는 항공사: 라이언에어
전통적인 대형 항공사는 앞서 말했듯이 마일리지 판매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만들지만, 유럽의 초저가 항공사 라이언에어는 다른 노선을 택했습니다. 이들은 로열티 프로그램 대신, 상품 구성을 달리하여 수익 구조를 구축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라이언에어의 초저가 항공권은 고객 유입을 위해 마련된 미끼 상품에 가깝습니다. 실제 수익의 상당 부분은 수하물 위탁, 기내 수하물 초과 요금, 좌석 지정, 우선 탑승, 기내 판매 등에 각각 과금하는 De-bundling 전략에서 만들어지죠. 보통 하나의 항공권에 포함시키는 여행 과정의 편의를 잘게 쪼개어, 필요한 사람들이 선택적으로 구매할 수 있게 하는 가격차별의 원리를 활용한 것입니다.
2024년 라이언에어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이 부가 서비스 매출은 전체 매출의 약 30% 수준을 차지합니다. 항공권보다 원가가 거의 들지 않는 항목들이기 때문에, 라이언에어의 수익성은 티켓 판매보다 추가 구매(부가 서비스)에서 훨씬 높게 창출되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3) 더 좋은 경험을 따로 판다: 테마파크와 영화관
테마파크 산업에서는 번들링 전략이 또 다른 형태로 나타납니다.
국제 놀이공원·어트랙션 협회(IAAPA)는 테마파크 전체 매출의 55~60%는 입장권에서 발생하지만, 이 티켓은 대규모 인력·에너지 비용을 충분히 커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는데요. 업계에서는 입장권이 사실상 로스리더(loss leader)에 가깝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반면 식음료와 기념품 같은 부가 구매는 전체 매출의 25~30%를 차지하며, 인당마진이 높아 방문객 수가 늘어날수록 수익성이 급격히 개선되는 요소입니다.
라이언에어가 ‘여행에 필수적인 요소’를 쪼개어 과금하는 De-bundling 전략을 사용한다면, 테마파크는 체험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선택지를 확장해 Up-selling 전략을 강화합니다. 패스트패스, 프리미엄 체험, 한정판 상품은 그 자체로 높은 마진을 만들며, 테마파크의 효율적인 수익 엔진으로 작동하죠.
비슷한 구조는 영화관 산업에서도 발견됩니다. 국내 영화 티켓의 평균 객단가는 약 9천 원대 수준입니다. 이 중 극장 본사 몫은 4천 원대에 그치는데요. 반면 팝콘과 음료 같은 스낵류는 원가가 10% 수준에 불과해 인당 마진이 높고, 고객이 많아질수록 수익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집니다. 영화관 역시 입장권과 같은 영화 티켓 뒤에 또 하나의 고마진 수익 엔진을 숨겨두고 있는 셈입니다.
이처럼 표면적으로는 전혀 다른 산업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모두 같은 전략적 메시지를 던집니다. 고객이 처음 사는 상품이 아니라 그 뒤에 이어지는 반복·부가 구매에서 수익을 극대화하는 구조, 이것이 바로 ‘미끼 상품 전략’의 본질입니다.
잘 나가는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본업 뒤에 또 하나의 수익 엔진을 숨겨두고 있습니다. 변동성이 큰 주력 사업만으로 승부하지 않고, 내부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외부 시장에 판매하거나, 새로운 사업 축을 마련해 예측 가능한 현금 흐름을 만들어내죠.
이런 ‘숨은 비즈니스 모델’은 단순한 부가 수익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자신이 속한 산업의 구조와 한계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약점을 상쇄하기 위해 다른 아이템을 접목하거나 서비스를 재구성할 수 있는 응용력이 필요하죠. 즉, 이는 정교하게 설계된 리스크 제어 장치이자 기업을 오래 버티게 만드는 시스템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만약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면, 한 번쯤은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우리 회사의 핵심 아이템은 지속 가능한 수익을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설계하면 안정적인 수익 사이클을 구축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 자체가, 기업의 방향성과 생존 전략을 결정짓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카카오벤처스 투자팀의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커뮤니케이션팀 에디터 인턴 Chloe가 제작에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