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헬스케어의 성공 방정식, 진짜 가치를 입증하는 법

Digital Diagnostics로 알아보는 의료 AI의 새로운 GTM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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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10, 2025
디지털 헬스케어의 성공 방정식, 
진짜 가치를 입증하는 법

지난 몇 년동안 무려 500개가 넘는 의료 AI 기기가 FDA 승인을 받았습니다. 개수가 늘어나며 의료 현장의 AI 혁신에 대한 기대감 또한 높아져만 갔습니다.

하지만 2023년 말, NEJM AI 저널에는 의료 AI의 냉혹한 현실을 드러내는 논문이 한 편 실렸습니다. 정작 미국의 CPT 코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가 처참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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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 Dictionary

  • CPT 코드란 Current Procedural Terminology Code의 약자로, 미국의학회(AMA)에서 관리하는 의료 절차 코드 세트입니다. 보험의 청구 및 지불 기준으로 사용되어, 이를 분석하면 현장에서 특정 진료·수술·검사가 얼마나 활발하게 활용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의료 AI는 현장에서 외면받고 있었습니다. 수백 개의 기기 중에서 유의미하게 현장 도입에 성공한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했죠. 이러한 현실은 FDA 승인은 그저 하나의 단계일 뿐, 그 뒤로 보험 수가 및 현장 도입의 더 큰 과제가 기다리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medical AI usage, 의료 AI 사용량
growth of medical AI in CPT codes, 의료 AI 성장

해당 논문에서는 몇 안 되는 의료 AI의 성공 사례 중 눈여겨볼 만한 선두주자로 두 개의 스타트업을 지목합니다. 바로 관상동맥 질환을 진단하는 HeartFlow와 당뇨망막병증을 진단하는 Digital Diagnostics입니다.

HeartFlow가 어떻게 성공적으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지난 글에서 알아보았는데요. 그렇다면 남은 하나의 퍼즐, Digital Diagnostics는 어땠을까요?

오늘은 HeartFlow와 다르면서도 비슷한 이들의 여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FDA 승인이라는 높은 허들을 뛰어넘은 뒤, 보험 수가 적용과 현장 도입은 어떻게 이루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떻게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해 AI 헬스케어의 완결된 이야기를 써 내려갔는지 말입니다.


문제 설정: 알면서도 당하는 실명, 반쪽짜리 혁신

Digital Diagnostics는 당뇨망막병증을 진단하는 AI 솔루션을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습니다. 당뇨망막병증(Diabetic Retinopathy, DR)이란 당뇨병의 가장 흔하고 심각한 합병증인데요. 혈액 내에서 높은 당이 지속되면 망막의 미세혈관이 손상되어 출혈이 생기고(비증식성 병증), 더 심해지면 약한 신생혈관이 생겨나(증식성 병증) 결국 실명에 이르게 됩니다.

diabetic retinopathy, 당뇨망막병증
normal retina and DR:Diabetic Retinopathynormal retina and DR:Diabetic Retinopathy

이 병증의 정말 무서운 점은, 자칫하면 실명까지 이어질 수 있는데도 초기에는 증상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뇨병 환자들에게는 매년 주기적인 안과 검진이 강력하게 권고됩니다.

정기적인 안과 검진만으로도 당뇨망막병증을 초기에 발견할 수 있고, 조기 치료는 심각한 병증을 막는 데 효과적입니다. 검진 자체의 의료적 가치가 확고하기에, 이를 권고하는 것이 표준 치료 지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뇨 환자들의 50% 이상은 이 검사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환자가 한 번 안과 검사를 받기 위해서는 내원 몇 주 전에 미리 안과 전문의와 진료 예약을 잡아야 합니다. 그렇게 일정을 잡은 뒤에는, 날짜에 맞추어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병원까지 이동해야 했죠. 이 번거로움이 검진을 받으려던 환자들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장이 먼저 시도했던 혁신은 원격 판독이었습니다. 1차 진료소에서 안저(fundus)사진을 찍어 보내면, 며칠 뒤 안과 전문의가 판독해 주는 방식인데요. 이 방식은 무려 7단계에 달하는 복잡한 행정 절차를 가지고 있었고, 환자는 진료 결과를 받기까지 또 한참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결국 이 환자들 중에서, 결과를 받고 후속 조치를 취하는 비율은 고작 25~37%에 그쳤습니다. 원격 판독의 시도는 실패한 셈입니다.

여기서 진짜 문제가 드러납니다. 중요한 건 ‘진단의 유무’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정말 해결해야 했던 문제는 ‘현장 즉시성의 부재’‘파편화된 워크플로우’였던 것입니다.


진짜 혁신: ‘자율형’ 현장 진단

Digital Diagnostics는 진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자율 AI를 제시했습니다. 의료에서 자율 AI는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여 건강 관리 및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을 말합니다. 단순한 의사결정 지원을 넘어, 실제 의료 현장에서의 진단·치료 계획 수립·환자 모니터링 등 전반적인 프로세스를 자동화하는 시스템이죠.

이들이 개발한 LumineticsCore(구 IDx-DR)는 자율형 현장 진단(Autonomous PoC) 솔루션으로, 당뇨 환자들이 일상적으로 관리받는 1차 진료 현장에서 사용되는 소프트웨어입니다.

비산동 안저 카메라로 촬영한 안저 사진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하고, ‘즉시 의뢰가 필요한 수준의 당뇨망막병증(mtmDR)’이 발생하였는지를 즉각적으로 진단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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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 Dictionary

  • 산동 검사 (Mydriatic)란, 산동제 안약을 넣어 동공을 확장시켜 망막을 정밀하게 들여다 보는 검사를 말합니다. 약효가 나타나기까지 일정 대기 시간이 필요하며, 동공이 원 상태로 돌아오는 데에도 일정 시간이 소요됩니다.

  • 비산동 검사 (Non-mydriatic)란, 동공이 평상시 크기인 상태에서 특수 카메라로 망막을 촬영해 진행하는 검사를 말합니다. 별도의 대기 시간이나 회복이 필요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솔루션의 효과도 빠르게 나타났습니다. 1차 진료 현장에서 바로 진단을 받을 수 있으니, 두어 달에 달하던 진료 대기가 3~5일로 단축되었죠. Tarzana Medical Center는 LumineticsCore를 도입하자 환자들의 검사율이 25%에서 71%로, 무려 3배 가까이 급증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진료 환경을 확연하게 바꾸고, ‘충분히 예방 가능했던 실명’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준다는 점에서 LumineticsCore는 명확한 의료적 가치를 가지는데요.

이에 따라 2021년부터는 ‘자율 AI를 활용한 망막 진단’에 대한 미국 보험 수가(CPT 92229)가 정식으로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임상시험으로 알아보는 Digital Diagnostics 일대기

이들의 혁신은 이미 가치 입증이 끝난 의료 과정이 더욱 효율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워크플로우를 바꾼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본 수가를 받는 과정에서 경제성 평가의 부담을 덜 수 있었죠.

나아가 솔루션이 제시하는 결과의 정확도를 인정 받아, 2018년 FDA로부터 의사의 확인 필요 없이 결과를 그대로 믿어도 되는 자율 AI로서 De Novo 승인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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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 Dictionary

  • De Novo 승인이란, FDA 인허가 과정에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유형의 의료기기’를 승인해 주는 절차를 말합니다.

  • 의사의 최종 확인이 필요한 기존의 진단 보조 AI와 달리, LumineticsCore는 안과 전문의 없이도 AI가 단독 진단을 할 수 있다는 최초의 승인을 받았기에 De Novo 트랙에 해당합니다.

  • 의료계 자율 AI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합니다.

한편, Digital Diagnostics는 바로 이 ‘최초의 자율 AI’라는 타이틀 때문에, 자율주행 자동차가 앞서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다음의 질문들에 답해야 했습니다.

“AI가 실수하면 누가 책임지나?”
”의사의 역할을 AI가 대체해도 윤리적으로 괜찮은가?”

이러한 의문에 대응하기 위해 이들이 세운 전략은 신뢰 우선주의입니다. Digital Diagnostics의 마케팅 총괄은, 본사는 초기부터 비용효과성이 아니라 환자의 안전과 윤리적·사회적 책임을 최우선에 두었다고 밝혔습니다.

FDA 승인을 위해 진행했던 2018년의 연구가 기술적 신뢰 가능성, 즉 정확도를 증명하고자 했다면, 이후 2019년부터 2021년까지는 최초의 자율 AI가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사회적·제도적 신뢰를 쌓아 올린 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digital diagnostics의 주요 이슈 및 마일스톤

Clincla.gov에서 확인할 수 있는 Digital Diagnostics의 임상시험은 5개, 논문까지 발행된 연구는 총 3개인데요. 오늘은 이 주요 논문 3개를 살펴보며 효율적으로 수가를 획득했던 Digital Diagnostics의 전략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1) 기술의 정확도 입증 단계 (FDA 이전)

A Multi-center Study to Evaluate Performance of an Automated Device for the Detection of Diabetic Retinopathy

우선 Digital Diagnostics는 솔루션의 완전한 자율성을 입증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안전한 자율 AI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안과 전문의가 아닌, 최소한의 교육만을 받은 일반 직원이 솔루션을 운영하더라도 정확한 결과를 내놓아야 하는데요.

900명의 참여자, 10개의 미국 1차 진료 기관과 함께 진행된 위의 연구를 통해, LumineticsCore는 민감도 87.4%, 특이도 89.5%를 기록하며 전문의 수준의 정확도를 입증했습니다. 이것이 2018년 FDA가 세계 최초로 ‘의사 개입 없는 자율형 AI’를 승인하는 결정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2) 기술을 넘어서는 신뢰와 시스템 구축 (2020~2024)

A Framework to Evaluate Ethical Considerations with ML-HCA Applications -Valuable, Even Necessary, but Never Comprehensive — 관련 대표 논문

FDA 승인 이후, Digital Diagnostics는 기술 개발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이들은 “AI 도입 시 윤리적으로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가?”, “실제 병원의 워크플로우는 어떻게 재설계해야 하는가?” 등의 화두를 던지며, 관련 논문을 10편 이상 발표하고 자율 AI의 업계 표준을 정립해 나갔습니다.

단순한 학술 검증을 넘어선 이러한 행보는, 기술적 완성도를 넘어 보수적인 의료 현장에 AI가 안전하게 안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 소아 당뇨 환자에서의 경제성 평가

Cost-effectiveness of Autonomous Point-of-Care Diabetic Retinopathy Screening for Pediatric Patients With Diabetes

나아가 성인보다 검사율이 현저히 낮은 소아 환자(T1D, T2D)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이를 통해 환자들의 검사율이 23%만 넘으면, AI 검사가 기존 전문의 의뢰 방식 대비 비용을 절감하는 동시에 더 많은 환자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죠.

자율 AI 도입이 환자의 접근성을 높이면서 실제 비용 절감으로 이어짐을 보여주며, CMS와 보험사에게 “AI 도입이 곧 비용 절감”이라는 경제적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4) 확장성과 윤리적 신뢰 입증을 위한 다양한 도입 사례

◇ Global Case Study — 네덜란드, 폴란드, 스페인, 방글라데시

이외에도 이 솔루션이 데이터에 편향되지 않은 AI임을 증명하여 윤리적 신뢰를 확보하고, 실제 의료진의 진료 생산성을 높인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연구가 다수 진행 되었는데요.

글로벌 임상 데이터를 통해 인종간 성능 차이가 없음을 확인하며 AI 편향(Bias) 문제를 해결하고 의료 형평성(Health Equity)을 확보했다는 강력한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특히 방글라데시 연구는 전문의 1인당 진료 생산성이 약 40% 증가함을 입증하며 병원 도입의 실질적 유인을 제공했습니다.


AI 헬스케어의 성공 방정식: 가치 입증을 위한 ‘빈틈 찾기’

Digital Diagnostics는 HeartFlow와 마찬가지로 기술 개발 → 임상적 입증 → 규제 승인 → 보험 등재라는 정석적인 4단계를 따랐습니다. 이들의 성공은 최초라는 화려한 타이틀 덕분이라기보다, 시장의 질문에 정확한 증거로 답해온 치열한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HeartFlow가 가치 입증을 위해 험난한 산을 넘었다면, Digital Diagnostics는 가치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길을 만들었는데요. 이에 따라 둘의 여정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HeartFlow는 규제와 보험사를 설득하기 위해 ‘끝없는 증명’을 해야 했습니다. 이들은 시장에서 수십 년간 신뢰를 쌓아온 ‘침습적 혈관조영술’과 경쟁해야 했습니다. 기존에 널리 사용되던 것을 대체하고자 했기에, 규제 승인 전부터 기술적 정확성을 증명해내야 했죠.

이후 Medicare 보험 수가를 위해서는 비용효과성을 입증해야 했고, 전 세계 다양한 환자군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RWE(Real-World Evidence, 실제 임상 증거)를 쌓으며 임상시험의 풀코스를 밟았는데요. 그야말로 쉴 틈 없는 가치 입증의 강행군이었습니다.

반면 Digital Diagnostics는 이미 입증된 가치 위에 ‘워크플로우 혁신’을 더했습니다. 엄밀히 말해 Digital Diagnostics는 HeartFlow만큼 방대한 양의 경제성 평가 논문을 쏟아내지 않았습니다. ‘당뇨망막병증을 조기에 발견하면 실명을 막고 비용을 아낀다’라는 의학적 사실은 너무나 명백했기에,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효용성을 다시 증명하는 대신, “좋은 걸 아는데, 왜 안 될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인 ‘불편한 워크플로우’를 자율형 AI로 혁신하는 데 집중했죠.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의료 AI 기업들은, 대부분 HeartFlow처럼 “우리의 기술이 의사보다 낫다”를 증명하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Digital Diagnostics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스크리닝과 같이 이미 가치가 증명된 영역에서 시스템의 비효율을 걷어내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시장을 열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Digital Diagnostics의 성공은 다음의 (1) 문제 설정의 차별화(2) 명료한 GTM 전략으로 정리해볼 수 있겠습니다.

HeartFlow와 Digital Diagnostics, 의료 AI의 두 가지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앞으로의 헬스케어 AI 전쟁에서는 ‘누가 더 똑똑한 모델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자기 기술에 맞는 ‘가치 입증의 경로를 얼마나 영리하게 설계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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