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 Dictionary | 부정 방정식
미지수의 개수가 방정식의 개수보다 많아 해가 무수히 많은 방정식입니다. 유체나 구조 해석에서는 압력, 속도, 변형 같은 미지수들이 서로 얽힌 채 조건식보다 많이 남아, 추가적인 물리적 제약이나 수치적 근사 없이는 하나의 해로 좁혀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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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하는 한 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바로 정밀함이란 한 번에 정답을 맞히는 완벽한 계산에서 나온다는 믿음인데요.
엔지니어링 세계를 들여다보면, 실상은 조금 다릅니다. F1 자동차의 공기역학도, 자동차의 충돌 안전성도, 반도체 패키지의 열 설계도 한 번의 계산으로 답이 나오는 문제가 아닙니다. 계산하고, 결과를 보고, 조건을 바꿔 다시 계산하는 시뮬레이션을 수차례 반복한 끝에 비로소 좋은 설계가 나오죠.
현장에서의 병목은 그 반복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점입니다. 고정밀 시뮬레이션 한 번에 며칠, 길게는 몇 주가 걸리는 상황에서, 엔지니어가 시도해볼 수 있는 설계안의 수는 물리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수십 년간 제조업의 표준이었던 CAE에 AI를 결합해 이 반복의 속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AI가 CAE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이 경쟁의 승패를 가를 조건은 무엇인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유체의 흐름, 구조물의 변형, 열의 전달처럼 다양한 물리 현상을 지배하는 방정식은 대부분 부정 방정식에 해당합니다. 하나의 물리 현상에 대해 무수히 많은 해가 존재하고, 어떤 해가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인지 정해진 풀이 절차만으로는 알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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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 Dictionary | 부정 방정식
미지수의 개수가 방정식의 개수보다 많아 해가 무수히 많은 방정식입니다. 유체나 구조 해석에서는 압력, 속도, 변형 같은 미지수들이 서로 얽힌 채 조건식보다 많이 남아, 추가적인 물리적 제약이나 수치적 근사 없이는 하나의 해로 좁혀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CAE(Computer-Aided Engineering)는 이 무수한 가능성 중 실제로 일어나는 물리 현상에 해당하는 하나의 해를 찾기 위해, 대상을 아주 작은 조각(mesh, 메쉬)으로 잘게 쪼갠 뒤 각 조각마다 물리 법칙을 만족하는 조건을 추가하고, 이를 반복적으로 맞춰가는 방식을 택합니다. 유한요소법(FEM)으로 대표되는 이 접근은 제조업 설계 검증의 표준으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물리 법칙을 직접 대입해 계산하는 만큼 이 방식은 정확하지만, 치명적인 대가가 따릅니다. 정확도를 높이려면 메쉬를 더 잘게 쪼개야 하는데, 메쉬가 잘게 쪼개질수록 계산해야 할 요소 간 상호작용의 수도 함께 늘어납니다. 그만큼 연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죠. 고정밀 시뮬레이션에 긴 시간이 소요되는 이유입니다.
이 병목을 겨냥해 등장한 것이 물리 AI, 그리고 AIAE(AI-Aided Engineering)입니다. 핵심 아이디어는 매번 물리 법칙을 처음부터 계산하는 대신, 시뮬레이션 데이터로 AI 모델을 학습시켜 물리 법칙 자체를 모델이 내재화하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학습이 끝난 모델은 새로운 설계안에 대해 며칠짜리 계산 없이 수 초, 빠르면 밀리초 안에 결과를 예측하는데요. 시행착오 루프 한 바퀴를 몇 주에서 몇 초로 줄이는 혁신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을 “시뮬레이션의 GPT 모먼트”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학술적 토대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쌓여 왔습니다. 물리 법칙을 손실함수에 벌점으로 심는 PINN(Physics-Informed Neural Network)이 2017~2019년에 제시되었고, 함수 간의 매핑 자체를 학습해 여러 조건에 일반화하는 뉴럴 오퍼레이터(FNO 등)가 2020년에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이 연구들이 산업의 정식 제품으로 흡수된 것은 불과 최근 1~2년 사이의 일입니다.
학계와 산업 사이의 이 시간차가 좁혀지는 바로 지금, 시장의 판이 새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AIAE 시장에서 어떤 팀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지난 1~2년 사이 이 시장에 뛰어든 플레이어들의 행보를 뜯어보면, 기술적 승부처가 세 가지 조건으로 수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다음과 같이 세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기존 CAE 강자들입니다. 이들은 정확하지만 느렸던 병목을 해소하기 위해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데요. ANSYS가 2026년 SimAI Pro/Premium과 GeomAI를 정식 라인업으로 출시한 게 대표적입니다.
다음은 물리 AI 스타트업입니다. CAD 네이티브 3D 딥러닝을 기반으로, 시뮬레이션을 아예 대체하기보다 필요한 시뮬레이션 횟수 자체를 줄이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죠. 영국의 PhysicsX가 2026년 3억 달러 라운드로 기업가치 24억 달러를 인정받으며 이 흐름을 이끌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범용 AI 파운데이션 모델 기업 역시 이 시장에 진입하려는 흐름이 보입니다. 프랑스 Mistral AI가 2026년 5월, 오스트리아의 피지컬 AI 스타트업 Emmi AI를 인수한 게 대표적입니다.
기존 강자도, 신생 스타트업도, 파운데이션모델 기업도 모두 AI로 시뮬레이션을 빠르게 만들겠다고 뛰어드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차이는 어디서 갈릴까요?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면 각 플레이어의 위치가 드러납니다.
첫 번재 질문은 신뢰의 문제입니다. AI가 그럴듯한 값을 찍는 게 아니라, 물리 법칙을 실제로 따르는 결과를 내는지 검증해야 하는데요.
제조업에서 시뮬레이션은 참고자료가 아니라 의사결정의 근거입니다. 자동차 충돌 안전이나 항공기 부품처럼 인증과 규제가 걸린 영역에서, 대체로 맞는 예측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접근 방식은 다양합니다. PINN처럼 학습 과정에서 물리 법칙 위반에 벌점을 주는 방식, 뉴럴 오퍼레이터처럼 물리계의 입출력 매핑을 함수 수준에서 학습하는 방식, 그리고 축적된 시뮬레이션 데이터의 패턴을 학습하는 서로게이트 방식이 있죠.
PhysicsX는 여기에 흥미로운 안전장치를 더했는데, AI 모델의 확신도가 낮은 구간에서는 자동으로 기존 수치 솔버로 계산을 넘기는 하이브리드 구조를 택했습니다. AI의 속도와 솔버의 엄밀함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은 것이지만, 뒤집어 말하면 아직 AI 단독으로는 전 구간에서 신뢰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질문은 존재 이유의 문제입니다. 정확하더라도 느리면, 원래의 CAE와 다를 게 없습니다.
현재 AI의 주류인 트랜스포머는 입력 요소 간의 모든 상호작용을 계산하는 어텐션 구조 위에 서 있는데, 이 비용은 입력 길이의 제곱에 비례해 늘어납니다. 텍스트라면 감당할 만하지만, 수억 개의 메쉬 셀로 이루어진 산업용 시뮬레이션 데이터에서는 이 비용이 다시 병목이 되죠.
그래서 이 시장의 기술 경쟁은 상당 부분 트랜스포머의 제곱 비용을 어떻게 우회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FNO(푸리에 변환으로 저주파 성분만 남기는 방식), 그래프 신경망, 상태공간모델(SSM) 등 대안 아키텍처들이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공략하고 있는데요.
여러 기업에서 속도를 얼마나 끌어올렸는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PhysicsX는 물리 유형에 따라 최대 수만~수십만 배의 가속이 가능하다고 말했고, Emmi AI는 밀리초 단위의 시뮬레이션을 내세웠는데요. 다만 대부분 각사의 자체 발표 기준이며, 제3자 벤치마크로 교차검증된 사례는 아직 드뭅니다.
마지막은 확장성의 문제입니다. 유체 모델 따로, 열 모델 따로, 문제 유형마다 모델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면 확장성이 없습니다. 고객사마다, 물리 도메인마다 처음부터 학습을 반복해야 하는 구조는 비효율적이죠. 이때 필요한 건 여러 물리계를 커버하는 하나의 범용 파운데이션 모델을 꿈꿉니다.
하지만 이 조건은 풀기 가장 어려운 지점이기도 합니다. 기존 강자들의 기술은 결국 고객이 축적한 시뮬레이션 데이터에 의존하기 때문에, 데이터가 없는 신규 도메인에서는 Cold Start 문제에 부딪힌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세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팀은 시장의 열기에 비해 아직도 흔치 않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저희가 주목한 한국 팀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솔버엑스는 현실의 복잡한 물리 법칙을 AI로 학습해 내재화한 물리 AI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카카오벤처스는 이 팀에 시드 단계부터 함께해왔는데요. 앞서 던진 세 가지 질문에 솔버엑스가 어떻게 답하고 있는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물리 법칙의 내재화는 결국 팀의 도메인 역량에서 출발합니다. 팀이 물리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느냐가, 모델이 물리 법칙을 얼마나 정확히 반영하는지를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솔버엑스의 최윤영 대표는 연세대 계산과학공학 박사와 국가수리과학연구소 박사후연구원을 거치며 CAE와 AI 분야에서 22편의 논문을 발표한 연구자입니다. 함께하는 팀은 수학·역학 올림피아드 국가대표 출신을 포함한 AI·물리학·해석역학·기계공학 전공 인력으로 구성되어 있죠.
데이터 패턴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수학과 역학의 언어로 모델을 설계할 수 있는 팀입니다. 즉, 솔버엑스의 첫 번째 답은 기술 이전에 팀 구성 그 자체입니다.
솔버엑스가 기본으로 삼는 것은 GNN입니다. 현상을 둘러싼 모든 지점을 서로 다 계산하는 대신, 물리적으로 실제 연결된 이웃끼리만 계산하는 구조인데요.
자동차 보닛의 한 지점에 발생하는 공기역학을 계산하기 위해 차량 반대편의 공기를 계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릅니다. 이렇게 하면 연산이 필요 이상으로 무거워지지 않죠. 다만 어떤 그래프를 그리느냐가 곧 모델의 성능을 결정하기 때문에, 팀의 전문성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솔버엑스의 역량은 최근 학계에서 검증받기도 했습니다. 솔버엑스의 논문 ‘ConvT3’가 세계 최상위 AI 학회인 ICLR 2026에 채택된 것인데요.
이 연구의 핵심은 앞서 짚은 트랜스포머의 제곱 연산 비용 문제, 그리고 RNN 계열의 장기 의존성 학습 한계를 동시에 겨냥한 SSM 기반 아키텍처입니다. 공간적 상호작용과 시계열적 안정성을 단일 아키텍처 안에서 확보해, 장시간 시뮬레이션에서도 물리 법칙이 어긋나지 않는 예측 성능을 보인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이는 정확성과 속도,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한 솔버엑스의 도전입니다. 단순히 빠른 모델이 아니라, 긴 시뮬레이션에서도 물리적 일관성이 무너지지 않는 빠른 모델을 만들고자 하죠.
솔버엑스는 이른바 물리 월드 모델을 추구합니다. 특정 물리 도메인의 전용 모델이 아니라 범용 아키텍처를 지향하는 것인데요.
시장에서의 답은 고객 구성에서 드러납니다. 솔버엑스는 자동차 완성차 및 부품사, 가전, 중공업, 반도체에 이르는 서로 다른 물리 문제를 가진 국내 대기업들을 고객으로 확보했고, 이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글로벌 고객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유체·열·구조가 각기 다른 이 산업들을 하나의 팀이 커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일반화 조건에 대한 실증적 답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CAD 설계부터 CAE 시뮬레이션, 설계 최적화, 생산 괴리 해소까지 워크플로우 전체를 커버한다는 점, 그리고 고도화된 별도 컴퓨팅 인프라 없이도 동작해 도입 장벽이 낮다는 점도 확장성의 다른 축입니다.
기술 평가 프레임워크로 담기 어려운 마지막 요소가 있습니다. 제조 대기업은 세상에서 가장 보수적인 고객군입니다. 검증되지 않은 기술에 자사의 설계 의사결정을 맡기지 않죠. 그 문턱을 넘어 시장 선도 기업들과의 계약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기술 데모가 아니라 현장의 문제를 푸는 능력이 검증되었다는 뜻입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CAE의 AI 전환은 이미 방향이 정해진 싸움입니다. 이제 남은 질문은 “AI가 CAE를 바꿀 것인가”가 아니라 “CAE의 AI 전환을 누가 이끌 것인가”죠.
그리고 그 답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오늘 살펴본 세 가지 조건이 계속 유효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조건들을 독자적으로 채우지 못한 팀은 결국 더 큰 자본에 흡수되는 길을 걷게 될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세 조건을 스스로의 기술로 채워가는 팀에게는, 몇십 년간 산업이 해결하지 못했던 병목을 넘어설 기회가 열려있습니다.
엔지니어링의 역사는 계산 그 자체뿐만 아니라 시행착오의 역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그 시행착오의 속도가 바뀌고 있죠. 카카오벤처스는 이 판의 변화를, 세 가지 질문을 손에 들고 계속 지켜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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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Chlo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