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의 키워드 'AI Slop'에 담긴 시그널

AI 슬롭을 경계하기 시작한 사람들, 살아남는 서비스의 조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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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07, 2026
2025년의 키워드 'AI Slop'에 담긴 시그널

AI의 등장으로 우리의 일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말 한마디에 뚝딱 일을 처리해 주는 AI와 함께라면 분명 더 신속하게, 더 효율적으로 많은 걸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막상 업무 현장을 보면, 당장의 현실은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이러한 기대와 현실의 괴리를 잘 잡아낸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2025년의 키워드 ‘AI Slop’입니다. 오늘은 이 단어를 출발점 삼아, 우리가 서 있는 거대한 AI 격변기 속 현주소를 짚어보려 합니다.


AI가 만들어낸 온라인 진흙탕

지난 12월, 미국의 국민 사전 Merriam-Websterslop을 2025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습니다. 이는 원래 오물이나 진흙탕처럼 질척하게 뒤엉킨 잔여물을 뜻하는 단어인데요. 이번에 새롭게 등재된 정의는 조금 다릅니다.
 

slop noun
digital content of low quality that is produced usually in quantity by means of 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을 활용해 대량생산된 저품질의 디지털 콘텐츠


slop은 이제 AI가 만들어낸 저품질의 무의미한 생성물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이 단어가 단순히 사전에 오른 것을 넘어 올해의 단어로도 선정되었다는 점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그널을 보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AI 생성물이 대부분 그다지 좋은 품질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이걸 모두가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죠.
 


관심을 끄는 공허한 이미지

초기의 AI Slop은 SNS 피드나 검색 결과 같은 일상적 공간을 파고들었습니다. 스팸 메일이 메일함을 가득 채우듯이, AI가 만들어낸 맥락 없는 이미지가 디지털 공간 구석구석을 채우기 시작했는데요.

이러한 이미지들은 사람들의 검색 의도와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습니다. 그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트래픽을 유도하기 위해 생성되었을 뿐입니다.
 

바닷속에 새우의 모습을 한 예수가 팔을 벌리고 있다. 뒤로는 물고기들이 헤엄쳐 지나간다. AI Slop의 대표적인 예시로 여겨지는 Shrimp Jesus 이미지다.
Shrimp Jesus (AI Slop의 대표적인 예시)


The Guardian은 이미 2024년에 이러한 스팸성 콘텐츠가 인터넷을 잠식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유용함보다는 관심 경제의 논리에만 충실한 이 콘텐츠들이 쌓이면서, 정보의 도서관이었던 인터넷은 점점 소음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Slop, AI와 함께 업무 현장으로

더 큰 문제는 이 흐름이 개인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겁니다. 2023년 이후 기업들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AI를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AI는 언제나 최상의 결과물을 제공하지는 않죠. AI가 생성한 엉성한 텍스트와 중간 산출물이 단시간에 폭증하게 되었고, Harvard Business Review는 이를 AI Workslop이라 명명했습니다.
 

workslop
AI generated work content that masquerades as good work, but lacks the substance to meaningfully advance a given task
겉으로는 좋은 작업물처럼 보이지만,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구체성을 담아내지 못한 AI 생성물


일반적인 온라인 환경에서 업무 영역으로 확산된 AI Slop은 이제 메모, 보고서 초안, 이메일, 회의 요약 등 다양한 형태로 생성되고 있는데요.

이 결과물들은 사실상 읽는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내용을 이해하고 사실 여부를 검토하는 인지적 판단을 상대방에게 넘기는 것이죠. 바로 이 지점에서 업무의 비효율이 발생합니다.


AI 슬롭이 쏟아지는 지금, 그 이유는?

지금 시점에서 사람들이 AI에게 기대하는 건 딱 한 가지, 자신을 대신해서 완벽한 의사결정을 내려주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하위 레벨의 일을 처리해 주고, 때로는 내가 놓친 부분까지 고려해 종합적인 판단을 해주길 바랍니다.

2025년 실리콘밸리의 업무 트렌드가 된 아카이빙은 이러한 기대 심리를 반영합니다. 자신이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입력하면 더 나은 판단을 해줄 거라 믿기 때문에, 사람들은 회의를 녹화하고, 음성을 기록하며, 업무와 관련된 문서를 가능한 한 모두 AI에게 학습시키고 있습니다.
 


AI가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을 기록하고 AI에게 업무를 맡기려던 시도는 도리어 더 많은 Workslop을 만들어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진행한 연구가 제시했던 들쭉날쭉한 경계선(Jagged Frontier)의 개념은 이를 잘 설명해 줍니다. 카르파시는 이를 LLM이 극복해야 할 주요 과제 중 하나로 소개했었는데요.
 

Graphic ⓒ Heinz Nixdorf Institut


AI의 능력치는 마치 톱니바퀴처럼 들쭉날쭉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어떤 업무에서는 인간 상위 1%의 능력을 보여주지만, 바로 옆에 있는 아주 기초적인 업무에서는 엉망진창의 결과물을 내기도 하죠.

그런데 이 불규칙한 경계선이 인간의 직관과는 전혀 다릅니다. 예를 들어, AI는 컨설팅 보고서의 초안을 구조화하고 논리를 정리하는 일은 명료하게 해냅니다. 하지만 정량 데이터와 인터뷰 메모를 함께 읽고 결정적인 한 줄의 맥락을 반영해야 하는 과제에서는 오히려 틀린 결론을 제시하기 쉽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두 작업이 유사한 분석 업무처럼 보이지만, AI에게 전자는 패턴으로 학습된 영역이고 후자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경계선 바깥에 놓여 있습니다. 바로 이처럼 인간의 직관과 무관하게 성능이 급격히 갈리는 불규칙한 능력의 경계를 이르는 말이 바로 들쭉날쭉한 경계선입니다.
 


기대와 능력의 괴리 사이에 낀 Workslop

지금까지의 AI가 어떤 영역의 자동화를 잘 해내고 있는지와 관련하여 스탠포드 연구팀에서 진행한 연구가 있습니다. 해당 연구에서 제시된 표에서 주목할 만한 업무 영역은 두 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태스크를 AI가 잘하지 못하는 영역: R&D Opportunity Zone

  • 🟢 Automation Green Light Zone (자동화 안전지대): 창의적인 아이디어 발산, 마케팅 문구 초안 작성, 방대한 텍스트의 단순 요약 등 — AI가 인간보다 빠르고 탁월하게 수행하며, 약간의 오류가 있어도 치명적이지 않은 영역입니다.

  • 🟡 R&D Opportunity Zone (자동화 기회지대): 조직 내 미묘한 뉘앙스 파악, 불완전한 정보 기반의 보고서 작성, 복합적인 상황 판단 등 — 피로도가 높아 사람들이 AI에게 맡기고 싶어하지만 아직 AI가 잘하지 못해 슬롭이 집중적으로 양산되는 영역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AI에게 가장 맡기고 싶어하는 핵심 태스크들 중에는, 아직까지 AI가 잘하지 못하는 업무도 존재합니다. 연구팀은 이를 추후 R&D가 필요한 기회지대로 분류했는데요.

현재 사람들은 AI가 유능한 대리인이 되어줄 것을 기대하고 이 기회지대의 업무를 맡기지만, AI는 능력 밖의 질문을 마주한 채 그럴듯하지만 알맹이가 없는 답변, 즉 슬롭을 내놓게 되는 것이죠.
 


맥락을 쪼개어 이해하는 AI가 필요한 시대

결국 문제는 워크플로우다

앞서 본 것처럼, 워크슬롭은 사실 특정 산업이나 상황에 대한 데이터 부족이 아니라 AI의 능력 경계를 전제로 설계되지 않은 워크플로우에서 발생합니다.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나온 AI 서비스가 사용자의 의도와 맥락을 정교하게 읽어내지 못할 때 슬롭이 발생하는 것이죠.

사용자가 요구하는 결과물이 어떤 모습인지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서는, 의도를 자세하게 쪼개어 분류하고 판단하는 설계가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설계가 준비되어야만, 쌓여 있는 방대한 양의 정보를 유기적으로 재구성해 비로소 쓸모 있는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다수의 AI 서비스는 이 맥락 파악의 메커니즘을 충분히 설계하지 못한 채, 기록과 생산(단편적 재구성)의 앞단의 자동화만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의미를 완성하는 책임은 다시 사용자에게 되돌아오고, 사용자는 미완성의 워크슬롭을 받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죠.
 


AI Slop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영역?

잠시 서비스를 운영하는 공급자의 입장에서 이 상황을 들여다보겠습니다. 모든 서비스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Workslop을 동일하게 문제적이라고 일축할 필요는 없습니다. 업무의 성격에 따라, 이 미완의 결과물이 가지는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되는 영역은 개발이 대표적입니다. 코드는 논리적으로 완벽하지 않으면 아예 작동하지 않는, All or Nothing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돌아가지 않는 방대한 코드는 수정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무용한 텍스트 덩어리에 불과하죠. 이러한 영역에서 AI가 만들어낸 ‘그럴듯해 보이지만 작동하지 않는 결과물’은 그야말로 Slop이 되어버립니다.

반면 영상 편집처럼 시행착오(Trial and Error) 자체가 본질적인 영역에서는 이야기가 다른데요. 여기서는 중간 산출물 자체가 탐색의 일부가 됩니다. 완벽하지 않은 결과를 여러 번 만들어보고, 사용자가 더 많이 선택하는 것을 더욱 의도에 맞는 컷과 구도라고 판별해 나가는 과정은 하나의 학습 과정으로 작용합니다. 그 과정에서 생성된 결과물은 사용자에게 채택되지 않더라도 의미가 있는 것이죠.

결국 핵심은 AI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의 양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맥락에서 불완전함을 허용할지 결정하는 설계에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고민 없이 단순히 생성 속도만 높인다면, Workslop은 유의미한 재료가 되지 못한 채 그저 처치 곤란한 기술적 부채로만 쌓이게 될 것입니다.


기술의 과도기, 트렌드는 반복된다

AI Slop이 나타나게 된 과정을 뜯어보니, 10여 년 전 헬스케어 영역에서 나타난 수치화된 자아(The Quantified Self) 트렌드가 떠오릅니다.
 

자신의 모든 건강 데이터를 측정하는 The Quantified Self의 트렌드

스마트 워치와 같은 웨어러블 기기가 일상으로 들어오면서 사람들은 쉽게 건강 데이터를 모을 수 있게 되었죠. 걸음 수, 심박수, 수면 시간을 비롯한 방대한 양의 기록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건강해진 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하는가(So what?)의 판단과 행동은 숫자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상황도 비슷한 지점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AI를 통해 기록과 생성의 비용을 낮추었지만, 무엇이 중요한지 선별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데 들이는 비용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쏟아지는 Slop 속에서 진짜 중요한 것을 찾느라 더 많은 주의력을 소모하고 있죠.

AI Slop은 이제 ‘얼마나 빨리,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가’의 시대를 지나 ‘어떻게 맥락을 설계하고 판단할 것인가’의 시대로 넘어가야 한다는 강력한 시그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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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Chl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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