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만든 레몬 마켓: 채용과 고객 신뢰는 안전한가?

AI 자소서와 가짜 리뷰가 넘쳐나는 지금, 생성을 넘어 검증의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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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26, 2025
AI가 만든 레몬 마켓: 채용과 고객 신뢰는 안전한가?

AI가 뭐든지 만들어 주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최근 Gemini와 같은 초거대 언어 모델들의 압도적인 성능을 보며, 우리는 인간의 리소스를 대체하는 기술의 발전에 매일 놀라워하고 있죠.

그런데 경제학에는 레몬 마켓(Lemon Market)이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이는 판매자는 차량 상태를 정확하게 아는 반면 구매자는 실제 품질을 알기 어려운 중고차 시장처럼,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해 좋은 제품(Peach)은 제값을 받지 못해 사라지고, 시장에는 불량품(Lemon)만 남게 되는 현상을 뜻하는데요.

AI가 모든 것을 생성해 주는 지금, 우리는 어쩌면 역사상 가장 거대한 레몬 마켓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AI가 만들어낸 정보 비대칭이 채용과 소비 시장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그리고 이 혼란 속에서 우리는 어떤 고민을 해야 할지 짚어보려 합니다.


무너진 시그널: 간절함을 증명하지 못하는 시대

AI가 불러온 첫 번째 변화는 바로 신뢰 시그널의 붕괴입니다.

과거 채용 시장에서 자기소개서나 커버 레터는 단순한 텍스트 이상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지원자가 해당 포지션의 JD를 분석하고 자신의 경험을 연결하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노력 자체가 곧 성실함과 간절함을 증명하는 강력한 시그널이 되어주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성형 AI의 등장은 오랫동안 통용되던 이 공식을 무너뜨렸습니다. 이제 누구나 엔터키 몇 번으로 JD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서류를, 그것도 단 몇 초만에 생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문장은 화려해졌지만, 그 안에 지원자의 진짜 ‘진심’이 담겨있는지 판단하기는 더욱 어려워진 것이죠.


사라진 ‘정성’ 프리미엄

최근 발표된 한 연구 결과는 이러한 변화가 시장의 가격 구조를 어떻게 비틀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프리랜서 플랫폼(Freelancer.com)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LLM 도입 이후 커버레터의 평균 길이는 두 배 가까이 늘어났고, 이를 평가한 퀄리티 점수 역시 2배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언뜻 보면 지원자들의 수준이 상향 평준화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한 가지 있었습니다. 모두가 제법 그럴 듯한 커버레터를 가져온 덕에, 오히려 변별력이 사라진 것입니다. 모든 커버레터가 완벽해 보이는 상황이 되자 고용주들은 커버레터를 더 이상 전처럼 신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과거에는 ‘정성’에 붙었던 가격 프리미엄마저 사라지는 결과가 나타났는데요. AI 이전, 프리랜서 시장에서 잘 쓴 제안서(Job Proposal)는 평균 $26의 추가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100 가격의 프로젝트라면, 정성스러운 글 하나로 26%의 웃돈을 받을 수 있었던 셈이죠.

하지만 누구나 AI를 통해 ‘정성 들여 쓴 것 같은’ 글을 낼 수 있게 되자, 그 노력은 더 이상 차별화 요소가 아니게 되어버렸습니다. 누가 진짜 실력자인지, 누가 AI를 돌린 지원자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되었으니 고용주는 모든 지원자의 몸값을 깎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헷지(hedge)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AI 도입 이후 해당 플랫폼의 전체 임금은 약 5% 하락했고, 채용률마저 1.5%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모두가 완벽한 레몬 마켓

이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레몬 마켓(Lemon Market)’ 현상입니다. 정보 비대칭이 심화되자 시장의 평균 가격이 내려가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진짜 실력을 갖춘 지원자들에게 돌아갔죠.

중고차 시장의 품질 하락 메커니즘, 프리랜서 시장의 임금 하락 메커니즘

물론 이것이 단발성 업무가 많은 프리랜서 시장만의 특수한 사례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텍스트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모든 과정에서 AI가 변별력을 지워가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서류의 신뢰도가 무너진 이후, 앞으로의 채용 시장은 인재를 검증하기 위해 어떤 새로운 비용을 치르게 될까요?


리뷰 시장의 역설: 효율과 신뢰의 줄타기

그렇다면 소비자의 선택을 돕는 온라인 리뷰 시장은 어떨까요? 여기서 우리는 효율과 신뢰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마주하게 됩니다.

최근 아마존은 방대한 리뷰를 AI로 요약해주는 기능을 도입했는데요. 이후 제품의 구매 전환율이 15% 이상 상승하며 뚜렷한 구매 유도 효과를 입증했습니다. 너무 많은 정보에 지친 소비자들에게 AI가 인지 비용을 줄여준 덕분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AI 요약의 효과는 가전제품처럼 스펙이 명확한 탐색재에서만 강력하게 작동했습니다. 반면 개인의 취향과 경험이 중요한 경험재에서는 상대적으로 그 효과가 미미했죠.


사람 냄새가 나야 믿는다

문제는 경험재 시장에서 보상 심리와 AI의 효율성이 결합하여 ‘가짜 원본’을 양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요즘 많은 브랜드가 '서포터즈'나 '체험단' 형태로 금전적 혜택이나 제품을 무료 제공하고 리뷰를 유도합니다. 과거에는 이 과정에도 최소한의 작성 노력이 필요했지만, 앞서 살펴본 채용 시장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죠.

혜택은 누리되 리소스는 아끼고 싶은 사람들, 이른바 '체리피커'들은 AI를 적극 활용합니다. 제품을 깊이 써보지 않고도 "정말 인생템이에요!", "적극 추천합니다!" 같은 미사여구를 AI로 빠르게 생성해내죠. 그러다보면 사실과 무관하거나 진정성 없는 리뷰가 인터넷을 뒤덮게 됩니다.

나아가 주관적 경험이 중요한 또다른 영역, 호텔 리뷰에 관한 한 연구는 리뷰의 참/거짓 여부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정성적인 신뢰도에도 주목했습니다. 사람들은 AI가 매끄럽게 요약한 글보다, 인간이 투박하게 쓴 요약본을 훨씬 더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AI 생성 텍스트보다 인간 작성 텍스트를 선호하는 현상

인간 전문가가 맥락을 담아 정리한 요약은 선의(Benevolence)와 진실성(Integrity) 측면에서 훨씬 더 높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사람들은 AI가 쓴 글에서 정보는 얻을지언정, ‘나를 위해 진심을 쓴 조언’이라는 느낌은 받지 못한 것입니다.


인간에게 남은 검증 비용

한편, 아마존의 사례처럼 AI가 정보를 요약해 주면 시간이 절약되어야 할 것 같지만, 신뢰가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집니다.

사람들은 인간의 글보다 AI가 쓴 요약을 읽을 때 더 많은 시간을 쓰고, 내용을 꼼꼼히 따져보는 경향을 보였는데요. “이 요약이 진짜일까?”, “할루시네이션은 아닐까?” 의심하며 원본 리뷰를 다시 찾아보고 검증하는 데 에너지를 쓰는 것입니다. 결국 원본 데이터의 신뢰성이 확보되지 않은 AI 요약은, 소비자에게 편리함을 주는 척하며 오히려 검증의 숙제를 떠안기는 셈입니다.

우리가 더 이상 리뷰의 품질을 확신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쩌면 리뷰에 대한 신뢰와 관심이 떨어지고, 더 이상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텍스트를 떠나, 영상처럼 AI가 아직 완벽하게 흉내 내기 어려운 시그널을 찾아 이동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AI는 텍스트의 생산 비용을 0에 수렴하게 만들었지만, 대신 훨씬 큰 검증 비용이 필요한 상황을 만들어냈습니다. 자소서도, 리뷰도 AI가 만들어내는 세상에서 정보의 양은 폭발하지만, 그 안에서 진짜(Peach)를 골라내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죠.

어쩌면 우리는 지금, ‘얼마나 잘 만들어내는가’의 경쟁이 끝나고 ‘이것이 진짜임을 어떻게 증명하는가’의 경쟁이 시작되는 변곡점에 서 있는지도 모릅니다.

무너진 신뢰의 시그널을 다시 세우기 위해 우리에겐 어떤 약속과 기술이 필요할까요? 거대한 레몬 마켓으로 변해가는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본질은 무엇인지 계속해서 지켜보고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본문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생각이나 경험이 있다면, 자유롭게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카카오벤처스 투자팀의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커뮤니케이션팀 인턴 Chloe가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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