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OTT, 소셜 미디어는 사실 같은 자원을 두고 경쟁합니다. 모두 ‘어텐션 경제’의 한 부분으로서, 사람들의 주의력을 놓고 경쟁하고 있죠.
AI가 콘텐츠 제작의 경제학을 바꾸는 지금, 콘텐츠 포맷이 아닌 소비 심리로 시장을 읽는 새로운 투자 좌표를 생각해봅니다.
게임산업의 성장이 더뎌지고 있는 이 시점, 게임 투자자는 어디로 가야할까요?
주변에서 정말 많이 물어보셨던, 그리고 저 역시도 스스로에게 여러 번 던졌던 질문입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지난 몇 달동안 시장을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만의 방향성을 정립할 수 있었는데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저는 앞으로 어텐션 경제라는 더 넓은 좌표 위에서 투자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게임을 떠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게임이 이미 어텐션 경제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더 분명하게 인식하게 된 것에 가깝습니다.
이 글은 그 인식의 과정과 근거를 정리한 글입니다.
게임 산업, 정말 위기일까?
먼저 게임 시장의 현 상황부터 짚어보겠습니다. 글로벌 게임 시장의 YoY 성장률은 코로나 시기 두 자릿수 급등 이후, 2022년부터 2~3%대로 가라앉아 있습니다.
반면 유저들의 기대치는 이미 상향 평준화된 상태입니다. 적당히 높은 퀄리티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더 좋은 그래픽, 더 좋은 모션을 구현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인데요.
결국 시장의 성장과는 별개로 글로벌 게임 시장의 제작비는 10년 사이 두 배 이상 뛰었습니다. Horizon Forbidden West는 2.1억 달러, Spider-Man 2는 약 3억 달러 정도의 제작 비용이 들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2억 달러 이상이 AAA 타이틀의 기본값이 된 셈입니다.
시장은 2~3%씩 크는데, 제작비는 그 몇 배 속도로 올랐습니다. 이는 2024년 한 해에만 Microsoft, EA, Sony, Ubisoft 등 대형 게임사에서 15,000명 이상이 정리해고되는 흐름으로 이어졌죠. 일시적인 조정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구조적 변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동안 유저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줄어든 플레이타임, 사람들의 눈과 귀가 향한 곳
유저들이 게임에 쓰는 시간은 줄었지만, 그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채널로 향했습니다. 숏폼, 라이브 스트리밍, OTT로 흘러갔죠. 말하자면, 사람들이 쓰고 있는 전체 주의력의 총량은 그대로입니다.
이제 지금의 게임 산업이 마주한 위기를 새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풍경은 한 섹터의 위기가 아니라, 경계가 흐려지는 모습입니다. 생각해보면, 요즘 우리가 시간을 보내는 방식은 이미 뒤섞여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 드라마 클립을 보고, 유튜브에서 게임 방송을 시청하고, 틱톡에서 영화 장면이 밈으로 돌아다닙니다. 어디서부터 게임이고 어디서부터 OTT인지, 소셜 미디어인지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있습니다. 포맷들이 서로 결합하면서 경계 자체가 흐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인식이 아주 새로운 건 아닙니다. 이미 2018년, S&P가 GICS를 개편하면서 Meta, Google, Netflix, Activision을 모두 ‘Communication Services’라는 동일 섹터로 묶었습니다. 즉, 경계가 흐려지는 흐름은 제도권이 7년 전에도 인식했던 변화라는 것이죠.
저는 게임이 더 큰 경제의 한 부분이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제가 봐야 할 좌표 역시 ‘게임 섹터’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어텐션 경제 전체로 넓어지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포맷은 변해도, 사람의 심리는 변하지 않는다
사람들을 사로잡는 어텐션 경제
앞으로 깊이 고민하고 배워가고 싶은 영역을 어텐션 경제(Attention Economy)라는 키워드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이 개념은 모바일/플랫폼 시대에 이미 자주 거론되었던 개념으로 사람의 주의력이 희소 자원이 되는 구조를 말합니다.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고, 늘어나지 않습니다. 콘텐츠의 공급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사람이 쓸 수 있는 주의력의 총량은 그대로입니다. 게임, OTT, 숏폼, 라이브 방송 모두 결국 같은 자원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투자 심사역으로서, 다른 형태의 서비스를 판단하는 기준은 게임의 성공 가능성을 가늠하는 기준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소비자, 사용자, 유저, 플레이어. 부르는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주의력과 시간을 쓰며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탐구해야 한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즐기는가 대신 ‘어떻게’ 즐기는가
더이상 어떤 형태의 ‘결과물’을 사람들이 보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포맷은 기술과 함께 계속 변하기 마련이라는 건 이미 실감하고 있으니까요. 모바일이 PC를 대체하는 시기를 지나 숏폼이 롱폼을 위협한지 오래고, 이제는 AI가 라이브를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의 아래에는 사람의 심리적 구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조는 기술보다 훨씬 느리게 움직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심리 구조에 집중해보려 합니다.
크게 다섯 가지의 메커니즘으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미리 말하자면, 하나의 프로덕트에서도 2개 이상의 메커니즘이 겹쳐 작동할 수 있습니다. 저는 프로덕트의 핵심 Hook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도구로서 이 특징들을 활용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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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텐션 경제를 바라보는 다섯 가지의 메커니즘
루프형(Loop) 반복 × 변동 보상이 만드는 습관. 가챠와 틱톡의 For You Page (개인화 추천 피드)
서사형(Narrative) 인지 종결 욕구와 호기심. 드라마, 웹소설, 스토리 RPG
실시간형(Real-time) FOMO와 희소성. 라이브 스트리밍, 스포츠, 트레이딩
관계형(Relational) 애착과 소속감. AI 컴패니언, VTuber, 팬덤 플랫폼
정보형(Information) 불확실성 회피. 뉴스 피드, 타임라인
포맷은 변하지만 메커니즘은 남습니다. AI가 산업의 경계를 빠르게 흔드는 지금, 저는 이 메커니즘 분류가 비교적 내구성 있는 투자 판단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실시간형과 관계형, AI 시대의 새로운 기회
저는 그중에서도 실시간형과 관계형, 두 가지 작동 원리에 주목합니다. AI 촉매가 가장 강하게 작용하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AI는 지금 콘텐츠 제작의 경제학을 바꾸고 있습니다. 영상 1분 제작비는 4,500달러에서 400달러로 떨어졌고, 며칠에 걸쳐 제작해야 했던 3D 에셋은 이제 10초 이내에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모든 유형에 영향을 미치지만, 성격이 조금씩 다릅니다. 루프형·서사형·정보형에서는 기존 시장의 비용을 낮추는 역할을 하는 반면, 실시간형과 관계형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시장 자체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실시간형의 경우, 중국에서 뚜렷한 변화가 보입니다. AI 버추얼 스트리머 관련 기업이 약 100만 개를 넘어섰고, 그 중 40만 개 이상이 2023년 한 해에만 새로 설립됐습니다. 기존 라이브 커머스는 전문 스트리머와 방송 인프라가 필요했지만, AI 스트리머는 24시간 무인 운영이 가능해 진입 장벽 자체를 낮추고 있죠.
JD.com의 버추얼 호스트
관계형은 LLM이 시장 자체를 새로 창출한 영역이나 다름 없습니다. LLM 이전에는 사람이 AI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Character.AI 유저는 하루 평균 2시간을 플랫폼에서 보냅니다. ChatGPT 평균 세션 7분과 비교하면, 사람들이 이 플랫폼에서 정보를 얻는 게 아니라 관계를 쌓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Google이 2024년 27억 달러를 베팅한 것도 그 흐름 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Character.ai 인기 페르소나와 평균 체류 시간
공급과 수요가 동시에 움직이고 있는 시점입니다. 비용 구조가 바뀌면서 새로운 수요가 생겼고, 지금은 그 수요 위에서 창업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죠. 실제로 AI 컴패니언, 생성형 VTuber, AI 기반 라이브 도구 같은 영역에서 시드와 시리즈 A 단계의 회사들이 최근 1~2년 사이에 눈에 띄게 늘었는데요. 극초기 VC로서 지금은, 시장을 직접 만들어가고 있는 회사들을 만날 수 있는 최적기입니다.
시장의 신호: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이 흐름이 저 혼자만의 가설이 아니라고 생각한 계기는, 시장에서 실제로 같은 결의 투자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a16z는 2023년 Character.AI Series A를 리드한 데 이어, 2026년 2월에는 일본 AI VTuber 스타트업 Shizuku AI의 시드 라운드를 리드하며 첫 일본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Shizuku AI는 AI 캐릭터와 컴패니언 개발에 집중하는 회사인데, 앞선 5유형 메커니즘의 프레임으로 읽어보면 흥미로운 경로가 보입니다. Shizuku는 YouTube에서 시청자와 실시간으로 대화하는 AI VTuber로 시작했습니다. 관계형 메커니즘 위에서 출발해 실시간형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구조죠.
게임 투자자로서 저는 이 패턴이 낯설지 않습니다. 게임에서 캐릭터 애착이 시즌패스로, 길드가 라이브 이벤트로 확장되던 것과 같은 문법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도 글로벌 시장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결의 시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게임 전문 심사역에서 어텐션 투자자로
다행스럽게도, 게임 투자자로서의 경험이 이 두 메커니즘을 보는 데 출발점이 되어줍니다. 리텐션과 세션 설계, 캐릭터 IP의 가치 평가, 커뮤니티 경제의 작동 원리 등 게임 투자자로서 익숙해진 사고의 도구들이 실시간형 서비스와 관계형 서비스에도 같은 언어로 작동합니다.
하지만 출발점이 곧 도달점은 아닙니다. AI 컴패니언의 안전 설계, VTuber·버추얼 IP의 운영 노하우, 라이브 커머스의 크리에이터 툴링과 백엔드 인프라, 신뢰 기반 커머스의 컴플라이언스와 같은 영역처럼 새롭게 공부해야 할 영역이 훨씬 많습니다.
가장 빠르게 배울 수 있는 길은 그 시장을 직접 만들고 계신 창업자들로부터 배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창업자를 만나는 것은 단지 좋은 투자처를 찾는 일이 아니라, 그분들이 보고 있는 시장의 결을 가장 가까이서 배우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또한 팀 동료들의 시야가 큰 도움이 됩니다. 카카오벤처스 안에는 커머스, 콘텐츠, AI 인프라 등 각각의 영역에서 저보다 훨씬 깊이 시장을 보고 있는 심사역 동료들이 있습니다. 모델·인프라 레이어까지 깊게 들어가야 하는 영역에서는 동료들과 Win Together 차원에서 함께 보려고 합니다. 새롭게 생겨나는 시장을 보는 일은, 한 사람의 안목보다 여럿의 관점이 모일 때 더 단단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 실시간형과 관계형 두 메커니즘 위에서 프로덕트를 만드는 회사를 찾아 다니려고 합니다. 주로 시드와 프리 시리즈 A 단계에서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지만, 검증하고 싶은 질문들은 있습니다.
사람들이 매일 30분 이상 머무르는 새로운 관계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을까
AI가 콘텐츠 제작 비용을 무너뜨린 자리에, 어떤 새로운 사업 구조가 들어서고 있을까
게임이 가르쳐준 캐릭터 IP와 커뮤니티의 문법은, AI 시대에 어떤 모습으로 재탄생하고 있을까
라이브와 커머스가 한 호흡에서 작동하는 시대에, 사람들의 신뢰는 어떻게 새롭게 구축되고 있을까
이 질문들을 함께 풀어가고 싶은 분, 또는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다면 짧은 메일이나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제가 직접 찾아뵙고, 한 수 배우겠습니다.
게임에서 어텐션으로, 제 시야를 한 단계 더 넓혀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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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웅 이사 (Jacob) | AI × Entertainment
일상에 즐거움을 더하는 스타트업의 든든한 지원군입니다. 콘텐츠 산업의 지원사업, 개발, 라이브서비스, 퍼블리싱 등 다양한 영역에서 쌓은 실전 경험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을 읽어냅니다. AI 도입으로 한 단계 더 진화하고 있는 Attention Economy의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합니다.